[위크엔드 포커스]'라이스 코리아' 선발대회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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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브랜드 쌀로 지은 밥들이 관능검사(맛이나 냄새 찰기 등을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브랜드 쌀로 지은 밥들이 관능검사(맛이나 냄새 찰기 등을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맛은 떨어지지만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가 각광받던 시대가 있었다. 이때는 값싼 정부미와 고급 일반미 두 종류로만 쌀이 구분되던 시대였다. 정부미를 주식으로 삼던 대다수 국민에게는 밥맛을 따지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통일벼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정부미=싸구려’라는 공식도 옛말이 됐다. 일반미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전국 각지에서 130여개 품종, 브랜드로 치면 1200여개가 생산된다. 말 그대로 ‘골라먹는 재미’가 생겼다.

그렇다면 좋은 쌀은 어떻게 고를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모든 쌀을 다 먹어보고 살 수는 없는 일. 한국소비자단체 협의회가 주최하고 농림부가 후원하는 ‘제1회 우수브랜드 쌀 평가 사업’ 과정을 들여다 봤다.

이 협의회는 8월부터 전국 14개 시도 자치 단체장의 추천을 받은 51개 브랜드 쌀을 분석해 대한민국 최고의 쌀을 뽑는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결과는 이달 20일경 발표될 예정. 쌀을 외모에서부터 품질, 혈통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분석하는 것이 미인 선발대회 뺨친다. 이번 평가 과정을 미인 선발대회에 견주어 가상으로 꾸며보았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밥 맛' 전문가들은 정확한 검사를 위해 하루 2번. 12개 브랜드의 쌀만 품평한다

●백옥 같은 피부, 미끈한 몸매

“476번입니다”

“키 3.2mm, 몸통둘레 2.6mm, 백색피부, 병 없고…, 괜찮은데.”

이달 초 ‘제1회 라이스 선발대회’가 열리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산물시험연구소.

일반인에겐 다 똑같은 쌀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기 특색 있는 몸매를 갖고 있다. 길쭉하고 날씬한 쌀, 짧고 통통한 쌀, 이마가 툭 튀어나온 쌀 등. 5mm도 안 되는 쌀알이지만 예리한 평가단의 눈엔 잡티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백옥 같이 하얀 피부는 기본, 수정처럼 맑은 피부를 가져야 명함이라도 낸다.

경기 6번, 대구 7번, 전남 43번 등은 촉촉한 피부(수분 함량 우수)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군살 없는 매끈한 몸매(도정도 12)로 전남 15번, 경기 47번, 경남 21번, 전남 30번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성숙한 몸매(완전립)를 갖춘 부산 12번, 전남 15번, 경북 51번 등은 풍만한 몸매를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출신지역 등 구체적인 정보는 모르고 있다. 주최측에서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무작위로 매겨놓은 번호가 전부다. 심사를 맡은 신현직 농산물시험연구소 연구원은 “대체로 맑고 투명한 쌀, 적당히 오동통한 쌀이 좋고 싸라기나 흰색 쌀 등이 섞인 쌀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 우승을 노리던 경기 6번은 빈약한 몸매로 상위권 입상에 그치자 못내 아쉬운 표정. 멀리 전남에서 올라온 15번은 완벽에 가까운 몸매와 피부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한껏 기대에 차 있다.

●혀끝으로 느껴지는 탱탱함

2단계 심사는 그들의 존재 목적을 시험받는 ‘밥’으로 변신하기.

쌀에 따라 수분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양의 물을 붓고 밥을 지으면 밥이 질어지거나 되지는 수가 있다. 관능검사(밥맛 검사의 일종)를 맡은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쌀 연구단 김상숙 박사는 “공정한 평가를 위해 쌀 고유의 수분함량을 정확히 측정한 뒤 각 쌀의 상태에 맞게 물의 양을 조절해 밥을 짓는다”고 설명한다.

적당량의 물을 공급받은 쌀들은 드디어 밥으로 변신한다. 밥통 속의 열기만큼이나 콘테스트 열기도 한껏 달아오른다. 몸은 불었지만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

“때깔 고운데,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가지고….”

건조상태에서 거무튀튀한 점을 숨기고 있던 쌀들은 밥이 되면 다 들통이 나고 만다. 쌀 상태일 때보다 밥 상태일 때 낱알의 반점이나 착색상태가 더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쌀 상태일 때는 알 수 없던 고유의 냄새가 성패를 좌우한다. “좋은 쌀은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달그레한 냄새’가, 반대의 경우 ‘쿰쿰한 냄새’나 뭔가 다른 냄새가 섞여 있다”며 경력 5년차 김혜련 연구원은 평가기준을 살짝 공개했다.

1단계에서 중위권에 있던 충남 43번은 일거에 대도약해 순위권에 들었다. 외모 평가에서 좋은 최상위권이던 전남 15번은 탈락의 위기에 놓였다.

관능검사의 하이라이트는 입안에서 벌어지는 조직감 검사.

“밥알 두세 개를 입안에 넣고 우선 혀끝으로 돌려보죠. 잘 떨어지나 끈끈한 찰기가 있나를 알아보는 것이지요.” 우리 혀의 20만 돌기는 쌀알 표면의 감촉까지도 느낄 수 있다.

어금니에 살짝 물고 튕겨보는 탄력성 검사는 쌀들로서는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씹을 때 파열 정도의 느낌을 경쾌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 팽창하고 있던 경기 6번은 최고의 점수를 얻어 순위가 크게 올랐다. 부산 12번은 종합점수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완전립-평균길이 3.2mm, 둘레 2.7mm. 반투명의 수정체 △싸라기-평균길이 4분의 3미만의 낟알. 미세한 균열이 많다.△미숙립-쌀알이 영글기 전에 추수한 쌀. 순백색에 불규칙한 모양. △피해립-오염 또는 손상된 상태에 따라 병해립. 충해립 등으로 나뉨 (사진제공 농촌진흥청 직물시험장)

●타품종 5% 이상 섞이면 감점

3단계에서 받게 될 DNA 검사는 표기된 품종과 같은지에 대한 유전자 검증. 소위 검증된 소양을 가졌는지를 확인하는 혈통 확인이다.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김기종 박사는 “브랜드 쌀의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진 저지방 고단백질적 특성은 비슷해 구체적 성분검사는 생략했다”고 말했다. 평균적으로 쌀 10g당(한 숟가락 정도) 0.7g의 단백질과 0.1g의 지방 그리고 밥을 했을 때 찰기를 달리하는 스타치(탄수화물) 성분이 7.6g 정도 있다.

이번 평가에서 더 중요시 되는 것은 단일품종인지 아니면 정확한 표기에 따른 혼합비율이 지켜졌는지 여부. 다른 품종이 5% 이상 섞여 있으면 감점 대상이다.

작물시험장 조영천 박사는 “같은 씨라도 토질과 관리상태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고 강조한다. 재배과정뿐만 아니라 추수, 탈곡, 보관, 유통에 이르기까지 쌀 맛을 변질시킬 요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

51개 쌀들은 3차례의 ‘무대심사’ 등 총 10차례에 걸친 검증을 거쳐 상위 12개 브랜드가 최종 결정된다. 이들 브랜드쌀은 농림부에서 인증하는 ‘러브 미(米)’ 인증마크를 부착하고 1년 동안 정부차원의 홍보활동 등을 지원 받는다. 또 같은 기간 중엔 철저한 품질관리와 물동량 등을 수시로 점검받는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 쌀 대표선수들은 이달 말경 우리네 식탁을 점령하러 나선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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