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아카시아'…소외당한 입양아가 내린 핏빛 저주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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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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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형은 일상의 내막에 숨은 공포를 끄집어내는 감독이다. ‘여고괴담’에서 그는 수년 째 같은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는 귀신을 교사와 친구들이 알아채지 못한다는 모골이 송연한 이야기를 통해 비인간화된 교육과 학생들의 소외를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신작 ‘아카시아’에서 박 감독은 단란한 가정의 일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이번엔 내러티브의 현실성과 디테일을 포기하고 화석화된 공포 이미지에 기대려는 것 같다.

결혼 10년째인 미숙과 도일 부부는 아이가 없는 것 외엔 부러울 게 없다. 미숙은 보육원에서 6세 남아 진성을 입양한다. 진성은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정원의 아카시아 나무에 집착한다. 미숙이 뒤늦게 아이를 낳으면서 진성은 더 소외감을 느낀다. 진성은 어느 날 집을 나가고, 아카시아 나무의 끔찍한 저주가 덮친다.

영화 초반은 군더더기를 빼고 바로 할 말을 하겠다는 듯, 속도감 있고 세련된 전개가 돋보인다. 그러나 ‘잔혹가정극’을 표방한 이 영화에서 입양아가 평화롭던 가정과 정면충돌하는 접점은 △“친자식이 최고야”하는 미숙 친정어머니의 편견 △죽은 벌레를 나무그림에 붙이는 아이의 악취미 △동생의 코를 막는 시샘 정도다. 이런 문제가 온 가족을 몰살시키는 끔찍한 저주의 에너지로 폭발한다는 설정에는 논리적 설득력이 결여됐다.

아이가 나무에 집착하는 이유도 “우리 엄마 죽었어. 죽어서 나무 됐어”란 설명 뿐 생모의 죽음에 얽힌 에피소드나 생모와의 교감 등이 배제돼 나무의 저주는 오히려 ‘오버’인 양 느껴진다.

온 집안이 핏빛 실타래로 뒤엉키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일상성과 현실성이 없는 ‘공포 퍼포먼스’로 인식되면서 심혜진의 두터운 파운데이션과 함께 다소 연극적으로 느껴진다. 때때로 돌출하는 강한 금속성 효과음향은 장면과 부합하지 못해 관객을 놀라게 할 뿐 무섭게 만들지는 않는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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