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사라, '단풍'

  • 입력 2003년 9월 14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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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단풍 드는 여자

어머니

내속에 서 있는 나무

그 시간 단풍 드는 시간

죽음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입술 단풍 드는 입술

침묵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몸 단풍 드는 몸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죽을 줄 모르는 죽음으로

살 속의 물과 꿈, 긴 속삭임 다 쏟아내고

내 속에 뼛가루 꽃나무를 꼿꼿하게 세운다

-시집 '시간이 지나간 시간'(문학동네)중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삶은 죽음 속에서 꺼낸 것이고, 詩는 침묵 속에서 꺼낸 것이며, 나는 어머니로부터 꺼내진 것이나 삶은 식어 죽음이 되고, 시는 흩어져 침묵이 되며, 나는 다시 단풍이 되니 어디까지가 새순이며, 어디까지가 삭정이인가?

뼛가루는 피어 꽃나무가 되고, 꽃잎은 떨어져 부엽(腐葉)이 되니 붉게 핀 저것은 꽃잎인가, 주검인가?

삶과 죽음의 극심한 이분법으로 삶이 자꾸만 방부 처리되는 요즈음, 아이들은 모두 병원(산부인과)으로 와서 병원(영안실)에서 죽으니 한 세상이 입원(入院)이로구나. 드물게 태초의 둥근 고리를 갖춘 시간을 예서 만나니 반갑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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