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송수권, '추석 성묘'

  • 입력 2003년 9월 9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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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묘

―송수권

추석에는 郊外線을 타자

힘 있게 흐르는 강물이 천리강산을 달려와서

몇 평의 모래밭을 만드는 것을

山에 마음을 주며 네 자랐던 곳

서울서 기차를 타고 여섯 시간

하늘 가까이 내려오다 멈춘 동네

백로의 날갯짓과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은

우리 조상님네 숨결이 어려 있는 땅

추석에는 우리 다 함께 郊外線을 타자

저 허공 위에 빗장고름 펄펄 날리며

도라지 풀초롱꽃 더윗술을 걸러 마시고

어느 여울물에 손발을 씻자

손발을 씻어 새 힘으로 뭉쳐서 돌아오자.

―시집 ‘꿈꾸는 섬’(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부분 인용

연어를 보러 멀리 갈 것 없다. 여름내 밤길만 골라 다니다 만삭(滿朔)이 된 보름달이 해맑게 웃을 즈음, 이땅의 모든 길들은 강물이 되어 흐르고, 회색 바다에 살던 나그네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달떠 지느러미가 돋는다.

여섯 시간 만에 도착하는 모천(母川)은 얼마나 행운인가? 어느 힘센 사내가 있어 저 아스팔트를 주욱 잡아당기면 고구마 덩이처럼 성큼 고향마을이 딸려 나올 것도 같지만 모천회귀는 언제나 고통스러워 영광스럽다.

저기저기 마침내 ‘백로의 날갯짓과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은 우리 조상님네 숨결이 어려 있는 땅’에 들어서자 쇠뿔처럼 허리 굽은 어머니 말굽처럼 달려 나오신다.

고향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여울이다. 뒷걸음치는 가재가 언제나 1급수에 살 듯 앞으로만 나아가는 우리의 영혼을 불러 정화시키는 곳이다.

오늘, 그리운 모천으로 가시는 나그네들이여, 세상 비바람에 잔뜩 눅진 마음뿐이래도, 가을장마 속에 주워 올린 풋사과 한 알뿐이래도, 구름 속에 못다 뜬 쟁반달뿐이래도, 넉넉한 고향 마음볕에 보송보송하여라. 모두모두 용서하고, ‘여울물에 손발 씻고 새 힘으로 뭉쳐서’ 돌아오시라.

온 우주에 달은 하나뿐이래도 고향 달은 언제나 고향에만 뜬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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