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3년 8월 21일 18시 19분


코멘트
武信君은 죽고(1)

그무렵 무신군 항량은 지난 달 장함(章邯)의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빼앗은 정도(定陶)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이미 동아(東阿)에서 장함을 쳐부순 적이 있는 데다 정도에서 다시 한번 진군(秦軍)을 크게 이기고 보니, 항량이 이끌고 있는 대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거기다가 항우와 유방이 이끄는 군사들이 옹구(雍丘)에서 또 진군을 크게 깨뜨리고 그 장수 이유(李由)를 목 벴다는 전갈이 들어오자 항량의 자신감은 차츰 교만으로 변해갔다.

“주문(周文) 따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진왕(陳王=진승)도 천하를 평정할 그릇은 못되었다. 어찌 장함 같이 용렬한 장수와 그가 이끄는 잡병(雜兵)들에게 그토록 낭패를 당할 수 있는가. 내, 날이 개는 대로 대군을 서쪽으로 휘몰아 함양을 깨뜨리고 호해를 사로잡으리라. 망국의 치욕을 씻고, 우리 초나라를 천하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서게 하리라!”

그렇게 큰소리치며 장함과 진군을 턱없이 얕보았다. 그 때 마침 항량의 진중에는 도성 우이(우이)로 가 있던 영윤(令尹) 송의가 회왕(懷王)의 명을 받고 전장의 형세를 살피러 와 있었다. 항량이 너무나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보고 한마디 쓴 소리를 했다.

“몇 번 싸움에서 이겼다고 장수가 우쭐거리고 병졸들이 게을러진다면 그 군사는 머지않아 반드시 다시 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장졸들이 차츰 겁 없고 게을러지는데 진군(秦軍)은 갈수록 늘어나니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장졸들을 다잡아 장함의 잔꾀에 대비하십시오.”

비록 책으로만 읽은 병법이었으나, 자못 날카로운 헤아림이었다. 하지만 송의를 문관으로만 여겨 깔보는 항량의 귀에 그 말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전장에서는 위로 하늘밖에 없는 임금이라도 장수의 군령(軍令)을 함부로 간섭하지 못하는 법, 이곳의 일은 장수인 이 무신군이 알아서 할 것이오. 영윤께서는 도성에서 내정(內政)이나 잘 돌보시도록 하시오.”

그래놓고는 사자란 그럴듯한 직함을 주어 송의를 제(齊)나라로 쫓아버렸다. 제왕(齊王) 전불(田불)과 제나라 실권을 틀어쥐고 있는 전영(田榮)을 달래 초나라와 함께 진나라에 맞서 싸우도록 만드는 게 겉으로 내세운 사명(使命)이었다. 그러나 항량은 아직 그게 가망 없는 일로 보고 그저 송의를 멀리 보낼 구실로만 삼았다.

그런데 그때는 제나라도 마음이 바뀌어 초나라와 힘을 합칠 뜻이 있었다. 고릉군(高陵君) 현(顯)을 사자로 삼아 항량에게 먼저 그 뜻을 알리려 했다. 그 고릉군 현이 항량에게로 오는 도중에 제나라로 가고 있는 송의를 만났다.

“공께서는 지금 무신군을 만나러 가는 길이십니까?”

서로 예를 나눈 뒤에 송의가 넌지시 물었다. 고릉군 현이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지금 초나라를 움직이는 이는 무신군이니 초나라와 손을 잡자면 반드시 무신군을 먼저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송의는 고릉군 곁으로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그래도 서두르실 일은 아닌 듯 싶소. 제가 보기에 무신군의 군사는 머지않아 반드시 크게 낭패를 당할 것이오. 공께서 천천히 가신다면 화를 면하게 될 것이나 빨리 가신다면 열에 아홉 무신군과 더불어 화를 입게 될 것이외다.”

만약 그 말이 제 말을 듣지 않는 무신군에게 품게된 앙심으로 해본 소리가 아니라, 병가(兵家)의 눈으로 보고 헤아린 것이라면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송의는 다시 큰소리로 무신군이 패사(敗死)한 뒤에 고릉군이 해야할 일까지 슬쩍 일러주었다.

“무신군이 초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초나라 임금은 그래도 우리 대왕[회왕]이외다. 대왕을 찾아 뵙는 일도 잊지 마시오.”

하지만 무신군 항량 아래에도 그 방심을 걱정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범증이었다. 범증은 한 병략가로서보다 일흔 나이를 살아오며 단련된 감각으로 어떤 위험을 감지했다. 겉으로는 한창 부풀어오르고 있지만 속은 허술하기 그지없어, 단 한번의 거센 파도에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 모래언덕 같은 느낌을 자기들의 진채에서 받고 있었다.

그 다음은 한신(韓信)이었다. 비록 집극랑(執戟郞)이란 하찮은 벼슬이었으나, 그래도 그의 눈길은 끊임없이 자기가 몸담은 항량의 군대와 상대인 장함의 진군(秦軍)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분산과 집중이라는 군사적 동태가 피아간(彼我間)에 점차 뚜렷해지면서, 자기편에 다가들고 있는 위험도 그만큼 뚜렷이 느껴져 왔다.

(지금 항량의 군사는 초기의 분발과 집중의 효과를 아울러 잃어가고 있다. 군사들은 거듭된 승리에 나태해졌고, 전선은 벌어져 전력(戰力)은 여기 저기로 분산되었다. 항우는 항량군의 알맹이랄 수 있는 강동병(江東兵)과 종리매(鍾離昧) 용저(龍且) 같은 맹장들을 이끌고 외황(外黃)으로 가 있고, 쓸만한 별장(別將)들도 각기 떨어져 있다. 패공 유방은 항우를 따라갔으며, 당양군 영포(英布=경布)와 장군 여신(呂臣)도 진채를 따로 진세(陣勢)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거기 맞서는 장함은 두 번이나 싸움에 져서 쫓기면서도 가만히 집중을 꾀하고 있는 듯하다. 거듭 싸움에 졌다고는 하지만 장함이 원래 이끌고 있던 병력도 태반은 보존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 관동(關東)에 나와 있는 진군(秦軍)의 다른 갈래는 자신을 지키기만 할 뿐 몇 달째 움직임이 없고, 이세 황제가 함양에서 있는 대로 긁어모아 보냈다는 병력도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알 수 없다. 이는 모두 장함이 어딘가 한 곳으로 병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함은 이미 지난날에도 그렇게 집중시킨 병력으로 강성한 적들을 쉽게 물리쳐 왔다. 그런 집중에 속도를 보태면 견뎌낼 적이 없다. 지금 장함은 다시 한번 그 집중과 속도로 앞을 가로막는 난관을 돌파하려하는데 - 그것은 아마도 항량일 것이다.....)

그렇게 헤아린 한신은 먼저 계포(季布)를 찾아가 자신이 헤아린 바를 털어놓았다. 듣고 난 계포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한신을 데리고 항량에게 가서 자신에게 한 말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런데 이미 무슨 패신(敗神)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항량은 한신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짜증부터 먼저 냈다.

“시끄럽다! 네 주제에 뭘 안다고 그리 주제넘게 떠드느냐? 장함의 잔꾀가 암습(暗襲)에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터. 그래도 저 또한 명색 장수인데 이미 몇 번이나 써먹어 천하가 다 아는 잔꾀를 다시 내게까지 쓰겠느냐? 게다가 - 죄수와 노복들로 머릿수만 채운 갈가마귀 떼 같은 군사라면, 설령 백만을 끌어 모아온다해도 전혀 두렵지 않다!”

그렇게 한신의 말문을 막으며 길게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한신이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물러나지 못하고 한 번 더 간곡하게 말했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상장군(항우)과 패공의 군사들이라도 정도(定陶)로 불러들이십시오. 미리 대비함이 있으면 걱정할 일이 없다[有備無患]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항량이 앞 뒤 없이 성을 내며 한신을 꾸짖었다

“닥쳐라! 며칠 전에는 한낱 책상물림이 군사 부리는 일을 논하더니 오늘은 집극랑이 오히려 대장군을 가르치려 드는구나. 네 무슨 심사로 그렇게 군심을 어지럽히느냐? 장졸들을 경동(驚動)시킨 죄로 목이라도 베이고 싶은 게냐?”

때마침 같은 걱정으로 항량의 군막을 찾았던 범증도 그 꼴을 보고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내몰리듯 쫓겨나는 한신과 함께 항량의 군막을 나가는 계포를 뒤따랐다. 군막 밖에는 마침 소나기가 한줄기 퍼붓고 있었다. 범증이 어두운 얼굴로 패연히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긴 한숨과 함께 계포에게 말했다.

“무신군께서 저렇게 펄쩍 뛰시니 오늘은 더 말씀드려봐야 소용없을 듯 싶소. 가까운 날 틈을 보아 공과 내가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려 봅시다.”

하지만 장함이 그들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때 이미 장함은 정도에서 하룻길도 되지 않은 깊고 외진 골짜기에 10만이 넘는 대군을 집중시켜 놓고 있었다. 항량과의 싸움에 져서 흩어진 군사들을 다시 끌어 모은 게 5만 남짓이요, 가까운 군현(郡縣)에서 가만히 긁어모은 게 2만이 넘는데다 장군 섭간(涉閒)이 함양에서 새로 끌고 온 군사가 또 3만이었다.

“내일 새벽 정도를 친다. 저 기고만장한 염(殮)장이 놈은 내일이 기일(忌日)이 될 것이다!”

그날 낮 장수들을 불러모은 장함은 자르듯 그렇게 말했다. 염장이란 항량이 민간에 있을 때 즐겨 남의 상사(喪事)를 돌보아 준 일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줄곧 죽은 듯이 엎드려 있기만을 엄명해온 장함이 갑자기 그렇게 말하자 장수들은 좀 어리둥절했다. 궁금한 것은 많지만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장함이 다시 자르는 듯한 말투로 덧붙였다.

“꼼꼼하게 잘 짜여진 계책 따위는 따로 없다. 오늘 해지기 전 군사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그 차림을 가볍게 한 뒤, 저물면 이 골짜기를 떠난다. 두 시진에 60리를 내달아 삼경(三更)에는 정도에 있는 도적들의 진채로 치고 든다. 산골짜기의 홍수가 큰 바위를 굴리듯, 내리 꽂히는 솔개의 부리가 새의 날갯죽지를 꺾어버리듯, 집중된 힘과 빠르고 세찬 기세로 적을 쳐부순다. 오직 그뿐이다!”

그러자 장함의 뜻을 알아들은 장수들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장함이 이끈 10만 대군이 추적이는 빗속도 마다 않고 밤길 육십리를 달려 정도 부근에 이른 것은 막 삼경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장함은 전에 했듯 말발굽은 헝겊으로 싸고 군사들에게는 하무[枚]를 물린 뒤 가만히 항량의 진채로 다가갔다.

그때 항량은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진채는 성밖 벌판에 벌여두고 있었다. 여러 번 뺏고 뺏기는 싸움으로 성벽이 심하게 헐어 성을 의지하기 마땅치 않은 까닭이었다. 군사들도 항량 쪽이 머릿수가 적고, 더군다나 거듭 싸움에 이겨 방심하고 있었다. 따라서 항량의 군대도 그전에 장함에게 당한 여러 군대들처럼 갑작스런 야습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항량의 방심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것은 허술한 경계였다. 밤이 어둡다는 핑계로 망보기는 아예 망루에 오르지도 않았고, 초저녁만 해도 횃불을 밝혀들고 파수를 돌던 몇 갈래 군사들도 삼경이 지나서는 진채 모퉁이에 여기 저기 몰려서서 끄덕끄덕 졸기만 했다.

어둠 속에서 그런 항량의 진채를 가만히 살피던 장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장수들에게 명을 내렸다.

“모두 하무를 빼고 횃불을 켜게 하라. 채비가 되면 곧 함성과 함께 들이치되, 장수들의 군막부터 먼저 덮쳐야 한다. 그 군막을 불사르고 얼치기 장수들만 잡아버리면 머릿수만 채웠던 촌뜨기들은 절로 흩어져 달아날 것이다.”

이미 여러 번 해본 일이라 장수들이 곧 시키는 대로 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