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조미옥/"이 바쁜 세상에 왜 걷느냐?"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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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옥
니체 칸트 등 역대 철학자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한결같이 산책을 즐겼다는 것이다. 걸으면서 사유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걷기야말로 ‘생각에 완전히 빠지지 않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 역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철학자들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매일 한강을 건너다보면, 복잡한 서울의 교통 메커니즘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갑갑함을 느낀다. 그래서 좀 여유가 있는 퇴근시간엔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내려 걸어가는데, 이렇게 걷기 시작한 게 벌써 7년째다. 하루 한 시간 이상 걷다보니 남들보다 체력도 좋은 편이다.

어떤 사람은 이 바쁜 세상에 왜 걷느냐고 묻는다. 진정한 걷기의 즐거움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계에 의존해서 공간 이동을 하는 것에 비할 수 없는 ‘느림의 여유’가 있다.

아침시간의 걸음은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에 적당하고, 점심엔 생각의 유연성을, 저녁 무렵의 걷기는 하루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어 뜻 깊다. 그러면서 나의 사고와 감성이 한 발자국씩 진보하고 있음을 느낀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문명의 발전은 가져올지언정 인간의 감성마저 지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느 새 걷기가 내 몸과 마음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걷기 효과는 대단하다. 체중조절은 기본이고 혈액순환, 심폐기능, 소화기능, 혈압조절, 남성능력 등에 놀라운 플러스 작용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걷기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최고의 운동인 셈이다.

루시 리파드의 ‘오버레이’라는 책을 보면, “에스키모들은 화가 났을 때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직선으로 걸음으로써 자기 몸에서 감정을 몰아낸다. 화가 풀린 지점을 지팡이로 표시하며 분노의 강도와 지속된 시간을 보여 준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걷기는 인간의 영적세계마저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천지가 꽃향기로 진동하는 봄. 해질 무렵 한강둔치나 광화문 거리, 비원을 걸어보자. 자연과 인간과 세상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랑데부가 아닐까.

조미옥 ㈜케이씨엔컨설팅 홍보대행 1팀장·서울 강북구 수유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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