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칼럼]'긴장' 그만하시구려

  • 입력 2003년 4월 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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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형. 형이 지난주 금요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의 바비큐파티에서 건배를 하면서 ‘긴장!’을 외쳤다면서요. 그 구호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고 하니 훌륭한 조크였던 듯싶소. 저 역시 신문을 읽고는 빙긋 웃었지요.

하지만 갈수록 뒷맛이 씁쓸한 것만은 어쩔 수가 없군요. 무르익은 봄날 저녁에 술잔을 나누며 ‘긴장!’이라니. 아무리 긴장을 풀자는 역설의 농(弄)이라 한들 제격은 아닌 듯싶소.‘술잔 오고갈 때 꽃이 벙그네(兩人對酌山花開)’, 그렇게 노래하던 이백(李白)의 풍류까지야 어찌 바라겠소만 봄꽃이 놀라 떨어질 ‘긴장’ 소리는 이제 제발 그만하시구려.

▼언제까지 ‘언론 타령’인가 ▼

언론 검찰 정치, 모든 부문과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나라의 틀을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한두 번 말했으면 그 다음에는 조용히 실천하면 되는 거지요. 또 그게 잘되느냐 않느냐는 결국 권력측이 계속 건전하게 긴장할 수 있느냐에 달린 일 아니겠습니까. 일의 순서가 그렇거늘 자꾸 긴장, 긴장 해대니 오히려 ‘긴장 피로감’부터 부를지도 모르겠소. 지난 10년 동안 줄곧 개혁, 개혁 하고 외쳐대는 바람에 ‘개혁 피로감’이 잔뜩 쌓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사람들은 매일매일 너무 많이 긴장하며 살고 있지요. 이라크전쟁이 끝나면 혹시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결코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북이 핵을 가지고 끝까지 뻗대도 ‘부시의 미국’이 참을까, 찜찜하고 불안합니다.

더 큰 불안은 경제입니다. 내수경기는 얼어붙고 분기별 무역수지가 5년여 만에 적자로 돌아선 데다 외국인 투자마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으니 이렇게 가다가는 ‘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고 걱정이 태산이지요. 이미 ‘사오정(45세 정년)’인 월급쟁이들은 또다시 무더기 구조조정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불안하고, 공무원들 역시 아래위가 서로 점수를 매기는 다면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겠지요.

한마디로 권력측이 신경 쓰는 ‘관계의 긴장’보다 ‘생활의 긴장’이 한층 절박합니다. Y형.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과도한 긴장을 얼마간이라도 풀어주는 게 아니겠소. ‘오보와의 전쟁’도 좋고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도 좋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언론 타령’이나 하고 있을 거냐는 시정(市井)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보다 급하지 않으냐는 겁니다.

언론개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론과 독자인 국민에게 맡겨 두시지요. 대통령의 말처럼 언론개혁에 정부가 깃발 들 일이 아니라면 ‘권-언(權-言)간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KBS사장에는 ‘우리 사람’ 앉히려는 식을 건전한 긴장관계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또한 지나친 보도통제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한다면 득(得)보다 실(失)이 클 것입니다. 언론 역시 시대의 반영이라면 조바심 내서 내 편, 네 편 가를 일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겨 여론을 수렴하고 균형을 찾는 인내가 필요하겠지요.

Y형.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송기인(宋基寅) 신부가 얼마전 이런 말을 했더군요.

“개혁은 말이 아닌 소신이 강해야 성공하며 동시에 말로 상대를 설득하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 개혁은 실패한다.”

▼‘생활의 긴장’부터 덜어줘야 ▼

그렇다면 이쯤에서 그동안 말이 너무 앞섰거나 많았던 것은 아닌지, 코드와 가치관이 다른 세력에 눈을 흘기기 전에 그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행여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긴장관계라면 그걸 정상적인 긴장관계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요. 그래서야 어떻게 국민통합의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Y형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외친 ‘긴장’이 웃음을 불러왔듯 ‘관계의 긴장’은 웃으며 유지하고 정부는 국민의 긴장을 푸는 일에 매달려야 합니다. 권력은 부단히 긴장하되 국민의 삶은 편안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주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요. 자, 이제 그만 말은 아끼고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생활의 긴장’을 덜어주기 바랍니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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