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배규한/한국사회 ‘균형’을 잡아라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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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이런저런 모임에서 “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사회학자이니 알 것 아니냐” 또는 “미래학을 공부한다니 뭔가 전망할 수 있겠지”라는 재촉을 받으면서 당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떤 장기적 전망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당장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시원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문은 얕은데 한국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하며 혼란스러우니 도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무엇이 한국 사회를 급격히 변화시키는가. 무엇이 한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가. 수없이 다양한 변동이론들이 있지만 크게 보면 주요 변수는 인구 환경 기술 가치관 정책 등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근원은 무엇보다도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정보기술이며 급격한 변동 과정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치관과 정책 부문이다.

▼급격한 변동… 가치관 혼란 극심▼

농경기술이나 산업기술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지만 정보기술은 정신적 능력을 확장하는 지적 기술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보기술은 생산의 중심을 제조업에서 정보서비스업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물리적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던 인간 활동을 사이버공간으로 대폭 옮겨 놓았고 생활양식이나 사회제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이 반드시 사회 발전과 쾌적한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치관이 과학기술의 방향과 사회적 이용을 규정한다.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면 기술 변동의 속도가 빠르고 폭이 클수록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 돈과 이익이다. 뉴스마다 투기 열풍, 복권, 2000억원, 4000억원 등 돈 타령이다. 돈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필부나 엘리트를 가리지 않고 거짓과 배신, 부정과 불법까지 불사하기 일쑤다. 둘째, 재미다. 연예 오락 스포츠가 생활을 지배하며 매스컴은 각종 프로는 물론 뉴스까지도 흥미 위주로 꾸미기에 바쁘다. 셋째, 민주화에 대한 맹신이다. 대중의 생각이 곧 선이며 무엇이든지 구성원들이 참여해서 결정하고 다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 넷째는 평등에 대한 환상이다. 학습 능력에 관계없이 학교는 평준화되어야 하고 남녀평등을 위해 최소 사회 단위를 가족에서 개인으로 바꾸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똑똑하고 잘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이처럼 왜곡된 가치관은 지난날 반대쪽으로 치우쳐 있던 모순을 시정해야 한다는 사무친 한(恨)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난과 생존, 독재와 불평등은 분명히 타파해야 할 악덕이었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반대쪽 끝까지 끌고 가다 보니 사회는 또 다른 모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느새 가난은 배금주의로, 삶의 의미는 쾌락으로, 독재는 무질서로, 불평등은 하향평준화로 대체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정부는 역사적인 여야 정권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의욕에 찬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사람만 바꾸었을 뿐 불법과 부정은 여전하고 개혁은 새로운 부작용과 비효율을 낳았으며 냉전적 사고를 대신한 햇볕정책은 적과 우방, 국방과 평화에 혼선을 가져왔다. 우측으로 지나치게 치우침이 모순이라면 좌측으로 지나치게 치우침도 모순임을 알아야 한다. 편향된 가치관에 바탕을 둔 정책은 왜곡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새로운 혼란과 모순을 야기한다.

▼左도 右도 지나친 편향은 위험▼

그렇다면 이제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릇된 가치관에 따라 편향된 인적 구성으로 왜곡된 정책을 추진한다면 경제는 내려앉고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며 나라는 해체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뿌리내리게 하고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해야만 한국 사회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배규한 국민대 교수·객원논설위원 khba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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