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시가 배당제-배당설 폐지가 증시 살릴까

  • 입력 2003년 1월 9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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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과 미국의 증권가에서 배당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장기 배당투자를 유도한다’는 목적 아래 공시나 사업보고서 작성 때 배당률을 액면가가 아닌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나타내는 ‘시가배당제’를 올해 안에 도입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는 6일(현지시간)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배당세 폐지 계획을 밝혔다. 증시 부양과 소비 진작 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야심이다.

하지만 배당투자가 기대한 것처럼 만능의 효력을 발휘할까? 답은 ‘아니다’이다.

실제 양국의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배당금 증가가 반드시 주가 상승 및 경기 회복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처럼 기업 수익 성장률이 제자리에 머문 상황에서 배당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증시 활황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며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여건에서 배당 관련 감세 정책 또한 경기 부양에는 역부족이라는 논리다.

▽배당이냐 사내 유보냐=기업은 이익을 남기면 배당금으로 주주에게 분배하거나 회사 안에 쌓아 사업 자금으로 쓴다. 배당과 사내 유보는 과실을 그때그때 분배하느냐 아니면 과실을 키워 나중에 더 많이 나눠갖느냐 하는 점에서 다르다.

다만 투자자들은 기업의 경영 성과를 그때그때에 확실히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배당을 선호한다. 해마다 또는 분기마다 정액소득을 탄다는 점도 큰 이점.

홍익대 선우석호 교수(경영학)는 “기업 유형별로 보면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하는 기업들에 대해 재투자를 통한 파이 키우기보다는 배당에 대한 요구가 많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배당을 늘려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은 일정한 돈벌이가 없는 투자자에게 생활비를 대줄 수 있는 성숙기 기업이라는 이야기다.

이래서 이런 주식은 ‘과부-고아 주식(widow-orphan stock)’이라고도 불린다.

또 ‘대주주와 경영진이 담합해 회사 돈을 빼먹고 엉뚱한 곳에 흥청망청 투자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한국에서는 배당이 대주주와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를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반면 사내유보는 투자 재원을 늘리고 자금 사정을 안정시킨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고 있다.

▽배당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굿모닝신한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증시에서 1990∼2001년 주가가 꾸준히 오른 종목은 전체 상장기업 680개사의 3.2%인 22개에 그쳤다(본보 8일자 B12면 참조).

이들의 특징은 다른 상장기업들에 비해 이익증가율은 훨씬 높은 대신 배당 성향은 크게 낮았다는 점이다.

이 증권사 정의석 부장은 “이는 자기 사업을 천직으로 알고 외곬 경영을 하는 정직하고 능력있는 기업들에 투자자들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음을 뜻한다”면서 “한국의 처지에서는 이처럼 선 굵은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당과 주가간의 관계는 미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대니얼 그로스는 “마이크로소프트, 델 등 지난 20년간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미국 기업들은 배당을 하지 않았다”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수익 창출 능력이지 배당 능력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는 “미국의 500대 대기업의 배당수익률이 1.7%로 은행 금리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배당세 면제가 증시 활황으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 부장도 “배당수익률이 평균 4∼5%로 시중금리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배당투자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때 이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당으로 큰 이득을 보는 측이 소액주주가 아니라 대주주와 경영진이라는 점도 배당투자가 소액투자자에게는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경제학)는 “주주 중시 경영이라는 명분으로 대주주가 투자 자금을 재빨리 회수하는 수단으로 배당을 활용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나 투자자들이 배당을 늘리라 말라 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며 “이익금을 어떻게 쓸지는 경영진의 판단에 맡기고 경영진은 자신들의 판단을 투명하게 공시해서 그 결과를 갖고 심판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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