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남경희/˝청소년 위한 대화-모험 공간을˝

  • 입력 2003년 1월 2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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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꿈을 안고 인생에 도전할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은 듣는 이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청소년들이 과중한 학업 부담, 왕따, 성적 부진, 이성교제 실패 등을 이유로 목숨을 가볍게 버리는 일은 적당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나약한 죽음은 현대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정착된 ‘소(少)자녀화’와 경제적 여유에 기인한 ‘온실효과’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온실 속에서 비바람을 모르고 커온 청소년들이 성인이 돼 가는 길목에서 쉽게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과보호로 왕자병이나 공주병을 앓는 청소년들은 결국 자기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살게 되고, 새로운 환경과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우리의 가족 규모는 과거 10명 전후이던 것이 4명이나 3명 단위로 최소화됐다.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사회를 배우고 원만한 인격을 형성하며 성장해가는데, 규모가 작은 가정에서는 가족간 대화나 상호작용을 할 기회를 잃기 쉽다.

가족과 힘을 합쳐 공동작업을 하는 경험도 청소년들의 사회생활력 형성에 매우 도움이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점하는 사회적 위치와 그에 따른 역할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거환경은 흙에서 멀어진 데다가 지나치게 편리해져 온 가족이 함께 땀을 흘리며 작업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청소년들은 직업과 노동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매우 부족하고, 심한 경우 노동을 천시하거나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개발 위주의 경제 발전이 지역사회의 기능을 무너뜨려 청소년들의 공동 체험의 장이 사라져버린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절대적 기아를 모르고 자라난 세대들이 땀의 의미를 터득하지 못할 때 사회생활력의 핵심인 친(親)사회적 행동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적 삶의 의의를 절감하지 못 하는 청소년들은 간섭이나 규제를 조금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여기에 청소년들은 경제적 여유 덕에 가정에서 자기 공간을 갖게 됐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은 독립된 자기 공간 위주의 삶에 더욱 빠지게 한다. 이는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을 배제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회피하는 일종의 자폐증세를 강화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청소년들을 나약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었다. 도전하고 인내하는 강한 청소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화나 체험,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대화하는 날을 정하고 학교는 이를 커리큘럼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는 가족 공동의 작업 공간과 작업 기회를 마련해 온 가족이 공동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인간과 자연을 배울 놀이 공간과 도전 정신을 키울 모험 공간을 많이 만들어 공동체를 알고 나약성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현실 사회를 함께 생각해 볼 토론 공간과 사교 공간도 많이 제공해 사회성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청소년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관심과 협력을 쏟을 때, 우리의 청소년들은 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다.

남경희 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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