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나의 취미]´인형의 집´에서 행복한 여자 정희영씨

  • 입력 2002년 8월 8일 16시 11분


전영한기자 scoopiyh@donga.com
전영한기자 scoopiyh@donga.com
‘오늘은 또 어느 공간이 사라졌을까.’

서영준씨(37·미디콤대표)는 퇴근길에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선다. 지난해 가을, 아내 신은미씨(34·주부)는 “직접 만들었다”며 인형을 하나 내밀었다. 그 때만 해도 서씨는 ‘몇 개 만들다 말겠지’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만들면 만들수록 인형에 욕심을 냈다. 어떤 날은 밤을 새우면서까지 작업에 매달렸다. 인형은 어느덧 30여개로 늘어나 벽, 식탁, 장식장 할 것 없이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신씨를 인형 만들기 마니아로 만든 이는 인터넷에서 ‘인형의 꿈’ 사이트(www.ilovedoll.co.kr)를 운영하는 정희영씨(33·주부). 신씨처럼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친구의 소개로 등록한 회원수가 사이트 개설 1년반 만에 4000명을 넘어섰다. 10대에서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남자 회원도 1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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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꿈’ 회원들에게 정씨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1년에 4번 오프라인에서 강의할 때면 전국에서 수강생이 몰려든다. 열성팬들은 해외에서 원단을 구입해 정씨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정씨는 “취미로 시작한 건데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4년 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방송국 리포터, 모델, 사보 기자 생활을 했던 정씨로서는 무거운 몸을 하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네 퀼트숍에서 인형 만드는 기본 방법을 배운 정씨는 닥치는 대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통이 시작된 날도 만들던 인형을 완성하고서야 병원에 갔을 정도로 인형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해서 두 달여 동안 만든 인형은 300여개. 소문을 듣고 인형을 구경하러 오거나 인형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늘자 정씨는 남편 이재원씨(38·대홍기획 제작팀장)의 도움으로 사이트를 개설했다.

‘인형 산업’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인형 관련 동호회나 온라인숍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정씨의 인형이 남다른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색다르다’는 매력 때문. 기본적인 생김새는 바비 인형 스타일이지만 길고 날씬한 다리, 감각적인 옷차림, 자연스러운 포즈 등이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정씨는 “깔끔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내려고 애쓴다”고 밝혔다.

정씨는 ‘인형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정씨의 인형을 둘러싼 따뜻한 일화도 많다.

일찍이 부인과 사별하고 딸 둘을 키워온 50대 후반의 택시 운전사의 사연이 그 중 하나. 그는 막내딸의 생일에 직접 만든 인형을 선물하고 싶다며 정씨에게서 재료를 구입해 갔다. 그리고 한 달이 넘게 딸들 몰래 인형을 만들어 생일날 건네줬다. 그는 “엄마가 없어서인지 어릴 때부터 딸아이들과의 관계가 서먹했는데 인형 덕택에 화목해졌다”며 정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씨에게는 이제 ‘인형 디자이너’라는 호칭도 따라붙는다. 그는 “마음에 드는 인형을 만들기 위해선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애정을 갖고 인형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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