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타]브라질 축구영웅 펠레

  • 입력 2002년 4월 3일 17시 56분


1970년 멕시코월드컵 체코와의 경기에서 펠레가 강력한 왼발 슛을 터뜨리고 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체코와의 경기에서 펠레가 강력한 왼발 슛을 터뜨리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황제’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지 않는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불멸의 스타 중의 스타에게나 걸맞은 영광스런 작위다.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62). ‘신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태어났다’는 펠레에게 ‘축구 황제’라는 칭호조차 부족한 느낌을 준다.

월드컵 4회 출전에 사상 첫 3회 우승, 프로통산 1363경기에서 1281골, 해트트릭 92회, A매치 92차례 출전에 97골. ‘펠레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펠레는 자신이 남긴 갖가지 기록과 함께 영원히 추앙 받을 듯 싶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구두닦이로 일하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펠레는 11세 때 운동을 시작해 타고난 천재성으로 유소년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은 불멸의 스타 펠레의 탄생을 알린 서막이었다. 당시 펠레의 본명은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 그러나 곧 ‘펠레(진주)’라는 별명이 본명이 돼 버렸다.

예선 세번째 경기에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은 펠레는 스웨덴과의 결승에서 2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브라질이 올린 16골 가운데 6골을 뽑아낸 펠레는 당당히 ‘베스트 11’에 뽑혔다. 그 때 펠레 나이는 불과 18세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62년 칠레월드컵에서 팀의 2연패를 책임지겠다던 펠레는 상대 수비의 집중견제를 받았고 예선에서 부상까지 입어 뛸 수 없었다. 그러나 펠레가 빠지고도 최강의 전력이었던 브라질은 2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벤치에서 우승을 지켜본 펠레로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엔아동기금(UNICEF)이 2002월드컵을 통해 전세계 불우 어린이들을 돕는다는 각서를 교환한 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뒤)과 함께 UNICEF 티셔츠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펠레.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펠레는 명예회복을 다짐했으나 거친 플레이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고 브라질은 예선탈락의 쓴잔을 들이켰다. 20대 중반에 접어든 펠레는 가슴속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사라진 그라운드에 더 이상 서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는 더 이상 월드컵 출전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브라질 국민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고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 다시 나서기에 이르렀다. 펠레까지 가세한 ‘드림팀’ 브라질은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1로 누르고 통산 3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이로써 브라질은 줄리메컵을 영원히 보관하게 됐고 그 중심에는 바로 펠레가 있었다.

1978년 은퇴한 펠레는 축구 대사로 전 세계를 돌며 꿈나무 지도에 헌신하고 체육 행정가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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