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크리스찬디오르 핸드백-루이뷔통 샌들

  • 입력 2002년 1월 17일 15시 40분


크리스찬 디오르 광고
크리스찬 디오르 광고
오래 전부터 동성애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태양 아래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다. 동성애자임을 공개한다는 단어인 ‘커밍아웃’이 벽장으로부터 나오다(Come Out of Closet)를 줄여 표현한 것이라 하니 그 벽장은 얼마나 비밀스러우면서도 우울한 공간이었을까.

이제 동성애는 사회 담론의 장으로 나왔다. 영화 소설 신문은 물론 광고에서도 동성애는 일반화된 소재다. 특히 여성간 동성애를 다룬 레즈비언 광고는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크리스찬 디오르와 루이뷔통 광고를 보자. 두 제품은 비교적 고답적인 패션 브랜드에 속한다. 제품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광고에서 제품만 제대로 보여줘도 팔릴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캘빈 클라인과 같은 말랑말랑한 브랜드에 뒤통수를 맞았다. “600여 쪽이 넘는 보그지를 들춰 보면서, 소비자들이 우리 광고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캘빈 클라인은 선언했다. 캘빈 클라인은 과감히 섹스를 소재로 한 광고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점잔 빼던 크리스찬 디오르와 루이뷔통에겐 충격이었다. 그들 역시 광고의 틀을 바꾸기 시작했고 레즈비언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크리스찬 디오르 광고는 비교적 정형화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지만 강렬하게 섹스 어필한다. 땀으로 흥건해진 피부, 물에 젖어 흩날리는 머리칼… 특히 눈 아래에서 트리밍된 두 여자의 얼굴은 감정이 고조된 레즈비언의 분위기를 훨씬 더 자극적으로 드러낸다.

두 여자의 성애의 감정이 교차되는 바로 그 극점에 디오르 핸드백이 위치한다. 청바지를 변형하여 원피스로 만든, 풍만한 가슴을 감싸 안은 보이시 느낌의 의상은 레즈비언 특유의 묘한 중성적 느낌을 전해준다.

“레즈비언은 남녀 관계를 초월하는 까닭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이다.” 젠더(性)이론가 쥬디스 버틀러의 말이다.

루이 뷔통 광고

루이뷔통은 좀 더 파격적이다. 내 신발에 입 맞춰 경배를 표하라는 듯한 모습은 새도매저키즘적인 섹스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전체 구도는 가학성 포르노 무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지만 루이뷔통은 그 안에 담긴 컨텐츠의 톤을 달리함으로써 도발적이지만 추하지 않은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선보인다.

손에서 머리로 이어지는, 가학에서 피학으로 흐르는 에로티시즘의 시선은 루이뷔통 신발에 가 멈춘다. 늘 섹시하게만 느껴지던 여성의 각선미에서 가녀린, 그러나 매서운 폭력의 느낌이 스며 나오는 생경한 분위기가 보는 이의 시선을 장악한다.

이제 동성애는 허구가 아니라 실체다. 벽장 속에서 떠돌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실체를 우리는 광고를 통해 만난다. 광고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

김홍탁(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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