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황수정 공판스케치 "수의가 어울린다고요?"

  • 입력 2002년 1월 10일 14시 34분


‘예진아씨’ 황수정씨(32).

마약 복용 및 간통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리와인드’시켜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구속이 집행될 때 그녀는 평상복이 아니라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유명인들이 구속되는 장면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많이 지켜봤지만 그들은 모두 조사받으러 나올 때 입었던 옷차림으로 구속이 집행됐다.

왜 황씨만 유독 죄수복을 입고 있었을까.

3차공판(지난해 12월 30일)에서 증인으로 나온 검찰수사관의 설명은 이렇다. 황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나서 영장이 나올 때까지 ‘좀 쉬라’고 구치소로 보냈다. 가까운 경찰서 유치장에 보내면 되는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느라 그랬다. 일단 구치소에 보내니까 구치소에서는 관례대로 무조건 죄수복으로 갈아입혔다. 나중에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자 구치소에서 죄수복을 그대로 입혀 검찰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해서 황씨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죄수복을 입은 이상한 신세가 됐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때 그런 그녀를 두고 ‘황수정은 죄수복도 잘 어울린다’느니 하며 ‘수의(囚衣)패션’ 까지 거론된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황씨가 검찰에 연행된 것은 지난해 11월 12일 새벽 4시경. 황씨의 애인 강모씨(35)를 붙잡아 신문하던 검찰수사관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강씨의 오피스텔을 급습해 그곳에서 잠자고 있던 황씨를 데려왔다. 새벽 4시라는 시각. 평소 아무리 친한 변호사가 있다 하더라도 이 시간에 불러내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임의동행 형식으로 검찰에 나온 황씨는 같은 날 새벽 5시 20분경 마약감정을 받았고 오전 8시 10분경 머리카락과 소변에서 히로뽕 양성반응이 검출됐다.

연예인 중에서 수능시험을 가장 잘 볼 것 같고 총각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하는 상대이며 시집가서는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가장 잘 할 것 같은 곱고 착한 이미지. 그런 여자가 뜻밖에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7일로 예정돼 있던 수원지법의 선고공판은 강씨의 부인이 두 사람을 간통혐의로 추가 고소함에 따라 연기됐다. 하명호 판사는 두 피고인과 피고인들의 변호인에게 “간통혐의와 관련한 새 공소장을 검토했느냐”고 물어본 뒤 “변호할 준비가 아직 안 됐을 것”이라며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서둘러 재판을 끝냈다. 합의를 볼 시간을 더 주려는 것 같았다. 황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왔다 덤덤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급전직하의 속도로 아찔하게 추락해온 2개월. 이제 간통 혐의로까지 고소된 마당에 그녀가 더 이상 추락할 곳은 없다.

1차 공판(지난해 12월 10일)에서 그녀는 수원지검 이상철 검사에게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기억이 안난다”고 진술내용을 부인하는 황씨에게 검사가 “IQ가 두자리도 안되느냐”고 비꼬자 “검사님 IQ는 몇이지요”라고 맞받아쳤다. 또 “강씨를 만난 게 히로뽕을 구하기 쉬워서가 아니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소설 쓰고 계시네요”라며 비아냥거렸다.

2차 공판(지난해 12월 24일)에서 그녀의 분노는 체념으로 변했다. 그녀는 피고인석에 들어서자마자 자포자기의 모습으로 ‘재판을 빨리 끝내주세요’라며 울먹였다. 이 때문에 그녀가 유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로라도 서둘러 나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나돌았다.

3차 공판에서 그녀는 체념을 극복하고 무죄주장에 의지를 다시 보였다. 판사가 보여주는 진술조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꼼꼼히 읽고 ‘왜 내가 그런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옆에는 강씨가 앉아 함께 재판을 받았다.

강씨는 1차 공판에서 히로뽕을 탄 사실을 황씨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가 2차 공판에서 이를 번복해 “마약류를 탄 사실을 황씨에게 알렸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3차 공판에서도 강씨의 답변은 왔다갔다 했다. “마약을 탄 사실을 황씨에게 알렸느냐”는 판사의 질문에는 “얘기는 했는데 황씨가 알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해놓고서 다시 검사가 같은 질문을 하자 “먹으면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말했지 명시적으로 마약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강씨가 말을 자꾸 바꾸면서 황씨가 점점 불리한 입장에 몰리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검사는 황씨가 단순히 히로뽕을 한두차례 복용한 것이 아니라 히로뽕 상습복용자이며 한걸음 나아가 히로뽕을 쉽게 구하기 위해 강씨에게 접근한 것이라는 의심까지 품고 있는 듯했지만 충분한 증거를 대지는 못했다.

황씨의 3차 공판이 열리던 날 새벽, 탤런트 이모씨(32)가 서울 서초구 방배동 팔레스 호텔 뒷길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수취로만 보면 그녀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 ‘만취상태’에서 운전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이씨는 한 방송사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수상소감 중에 “앞으로는 집앞에서라도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연히 시기가 겹친 이 두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범죄의식의 형평성 결여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황씨가 마약임을 알고 마약을 먹었는지 혹은 모르고 그랬는지는 곧 판사가 판단할 것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황씨는 그로 인해 자신이 후유증을 겪을지언정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입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에 비해 알코올 농동 0.1% 상태에서의 운전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실수로 남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었던 경우는 별 탈없이 넘어가고 처음부터 남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법원의 구속영장이 떨어지기도 전에 죄수복을 입어야 했다.

마약을 오랫동안 수사해온 검사들은 “마약이란 것이 그렇게 한두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또 머리카락에서 양성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꽤 중독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히로뽕은 이전의 많은 연예인들이 관련됐던 대마초보다 훨씬 강력한 마약이다. 황씨가 강씨의 권유로 단순히 히로뽕을 한두차례 복용한 것인지 아니면 상습적인 히로뽕 복용자였는지는 지금까지의 공판에서 제시된 증거들로 판단컨대 쉽게 가려지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만약 황씨가 상습적인 히로뽕 복용자라면 그건 처벌로 응징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재활원에 보내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황씨는 시대착오에 가까운 ‘순정의 여인’이라는 이미지 속에 살아왔다. ‘허준’에서의 예진아씨역이 그렇고 ‘엄마야 누나야’의 부자집 벙어리 맏딸역이 그랬다. 그러나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되고 간통으로까지 고소된 지금, 그녀의 옛 인터뷰들을 뒤적거리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거기에서 진실은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허구의 이미지는 산산히 깨지고 감춰진 ‘현실’이 드러났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비속한’ 여배우의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그 ‘비속함’으로 누군가를 찌르고 해친 적이 있는가. 완벽한 메이크업을 하기 전에는 사진촬영에도 잘 응하지 않던 그녀가 이제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들어온다. 피의자가 거짓말할 수 있는(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법정에서 그녀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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