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속의 에로티시즘]외설은 '자극' 예술은 '감동'

  • 입력 2002년 1월 10일 14시 04분


맥주 '스타인라거' 광고 사진
맥주 '스타인라거' 광고 사진
“아름답다는 말보다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여성 언더웨어 와코루의 카피다. 섹시하다는 말이 유교문화권인 한국에서도 기분 좋은 찬사가 된 지 꽤 됐다. 자신의 벗은 몸을 보고 아름답기보다는 외설스럽다고 느껴지기를 바라는 갈망이 자기 마음 속 이드(id)에서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고에서의 에로티시즘은 일부러 외설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눈과 귀에 꽂히지 않으면 광고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캘빈클라인 진 광고는 바로 그 외설 시비로 미국과 영국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의도적으로 ‘어린이 포르노(kiddie porn)’의 분위기를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린 것은 물론 뉴욕 데일리(New York Daily)가 모델 중 미성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냄으로써 FBI가 수사에 나선 후 광고를 내리게 된 일화를 남겼다. 매스컴에 오르내린 덕분에 브랜드를 알리는 충분한 광고 효과를 보았던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가슴을 드러내 보이며 음란스러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델의 모습에서 매음녀의 분위기를 직감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일부러 저급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캘빈클라인의 브랜드 파워를 믿고 배짱을 부려 본 것일 게다. 브랜드에 자신이 있을 때, 모험도 뒤따를 수 있다.

캘빈클라인의 진 광고

주류 광고도 섹스 어필을 자주 활용하는 분야다. 알코올은 사람들을 디오니소스의 광분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그 광분의 상태에서 섹스는 빠질 수 없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은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인 것이다. 스타인라거(Steinlager)라는 뉴질랜드맥주 광고는 바로 그 디오니소스적인 광분의 상황을 미니멀한 한 장의 컷으로 표현한, 외설의 느낌을 주는 예술 작품이다. 맥주임을 알려 주는 기호라곤 반으로 접힌 병뚜껑 뿐이다. 그 병뚜껑이 마치 남성이 입으로 애무하듯 여성의 유두를 물고 있다. 영화 ‘크래쉬(Crash)’가 사람과 테크놀로지와의 성적 결합이라는 기괴한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의식과 육신을 침범한 기계문명을 들춰 보였다면 이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物神)과 인간이 성적 환희를 나누는 장면을 포착했다. 상당히 외설스럽지만 비주얼의 상상력 만큼은 박수 갈채에 값할만 하다.

예술은 감동을 주고, 외설은 자극을 준다. 사람들은 감동을 원하는 척 하면서 자극을 요구한다. 겉은 ‘타임’지인데, 속은 ‘사건비화’인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그 요구에 광고는 적극적으로 부응한다. 광고에서의 외설은 그러므로 계속 양산될 것이다.

김홍탁(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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