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블랙박스]물 무서운 정준호 '겁 질린 수중연기' 더 실감

  • 입력 2001년 11월 5일 18시 17분


완벽해 보이는 스타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아무리 만능이라고 해도 못하는 것도 많다.

한때 유명 작곡가이자 가수로 이름을 날린 A는 뛰어난 연주 실력과 음악성을 지녔으나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 않아 악보를 그릴 줄 몰랐다. 이 때문에 그가 작곡한 첫 히트곡은 A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듣고 작곡을 전공한 다른 가수가 대신 악보를 그려줬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출신의 신현준은 수영과 테니스 실력이 수준급이다. 물에 들어가면 물개같은 수영 솜씨를 뽐내는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불이다. 그러니 그가 소방관 영화 ‘싸이렌’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겪었던 고충은 짐작할 만하다. 촬영 내내 그는 화상을 입을까 두려워 얼굴에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촬영에 임했다. 그 때문에 영화에서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번들거린다.

‘싸이렌’의 공동주연이었던 정준호는 불에는 아주 용감했다. 웬만한 불길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촬영에 임해 스태프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는 신현준과 정반대로 물을 무서워했다. 어렸을 때 익사할 뻔해 아직도 물에 들어가면 두려움이 앞선다고 한다.

이달 개봉하는 영화 ‘흑수선’ 촬영 현장에서 정준호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포로였다가 빨치산이 되는 정준호는 시종일관 용맹한 캐릭터로 비춰진다. 영화 중 수용소를 탈출한 포로들이 은신해 있던 학교에 경찰이 불을 지르는 장면에서 정준호는 용감한 모습을 보이며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이 문제. 교실 바닥에 숨어있던 포로들이 땅굴을 파고 도망가다 우물과 연결된 수맥을 건드려 땅굴 안으로 엄청난 물길이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안성기 이미연 정준호는 기를 쓰고 헤엄쳐 도망쳐 나오게 돼있었다.

촬영을 앞두고 초조해진 정준호는 감독에게 대역을 건의했지만 클로즈업을 따야 하는 감독 입장에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능 스포츠맨 안성기는 벌써 물에 들어갈 채비를 끝내고 여유만만이었다. 다급해진 정준호는 이미연에게 대역을 써야 한다고 설득했고 이미연도 걱정이 앞서 쉽게 촬영에 임하지 못했다. 이를 눈치챈 제작자와 감독은 먼저 이미연에게 계속 자신감을 심어줬고 그녀가 고민 끝에 촬영을 결정하자 정준호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다.

안성기가 먼저 물 속에 뛰어들었고 이어 이미연이 비장하게 뛰어들자 정준호도 마지못해 수심 2m가 넘는 대형 수조로 들어갔다. 몇 번의 NG 끝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모니터로 확인해보니 오히려 겁에 질린 정준호와 이미연의 표정이 영화 속 상황에 더 어울렸고 관객의 눈에는 리얼한 연기로 보였다.

자상하고 감미로운 연기의 대명사인 류시원은 번지점프대 앞에만 서면 몸이 얼어붙고, 반면 번지점프를 식은 죽 먹듯 하는 터프가이 한재석은 말랑말랑한 멜로 연기를 시키면 닭살이 돋아 어쩔 줄 모른다.

자신이 잘하는 것만 골라서 연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 어떤 연기와 상황이 주어질지 모르는 연기자들이기에 평소에 이것저것 배워두고 약점을 보완해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영찬<시나리오 작가>nkja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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