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칼럼]보살핌 안에 구원이 있다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2분


며칠전 문안을 드리기 위해 한 노스님을 찾아뵌 일이 있다. 한동안 뵙지 못해 안부가 궁금했고 의논드릴 일이 있어, 산중의 암자로 찾아갔었다. 그날은 눈발이 흩날리는 영하의 날씨였는데 노스님이 거처하는 방안이 냉돌처럼 썰렁했다.

왜 방이 이렇게 차갑냐고 여쭈었더니 노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세상에서는 한뎃잠 자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시주밥 먹고 사는 중이 어찌 방안을 따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썰렁했던 노스님의 방▼

산중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땔감을 두고도 일부러 군불을 조금밖에 지피지 않아 썰렁한 방안. 노숙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팔십노인의 그 꿋꿋한 의지에 나는 더 할말이 없었다. 그날 그처럼 썰렁했던 노스님의 방이 요즘의 내게는 화두처럼 가슴에 걸려 있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이때, 일터를 잃고 실의에 빠져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가 2백만명에 가깝고 집을 나와 한뎃잠을 자는 노숙자 또한 적지 않은데 이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 낼지 암담하고 우울하다. 이런 일에는 정부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뜻있는 이웃들이 거들면서 우리 시대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어둠 속에도 빛이 있듯이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삶에는 잠재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실직과 노숙에서 오는 고통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능히 견디어 낼 수 있다.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고 했듯이, 산다는 것은 즐거움과 함께 고통이 있게 마련이며, 살아 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외람되지만 내가 살아온 길목마다 내 등뒤에서 나를 속속들이 지켜보는 ‘시선’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그 시선은 이대로 내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엉뚱한 생각을 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때로는 꿈속에서그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울 때도 있다.

그 시선은 지금 살아계시거나 이미 돌아가신 우리들의 어머니나 아버지일 수도 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 혹은 사람마다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수호천사일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부처님일 수도 있다. 무어라고 부르든 이름에는 상관없이 그 시선은 늘 나를,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삶의 가치척도 반성을▼

그 시선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비극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모습으로 보고 싶어 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해 이맘때 나는 네팔과 인도 히말라야의 가난한 산촌을 여행하고 있었다. 현재 우리들의 생활수준과 견준다면 겉으로는 말할 수 없이 열악한 수준 이하의 삶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은 도시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따뜻한 인정과 맑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그들은 나에게삶의가치 척도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두고두고 생각케 했다.

귀국하기 위해 뉴델리에 들렀을 때 숙소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거덜난 나라살림을 국제구제금융에 호소하는 뉴스를 보고 나는 온몸에 열이 나고 몸살기운이 번졌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자탄하게 되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 일은 돌발적으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뿌려서 제 손으로 거두는 인과관계의 고리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새로운 씨를 뿌려서 새로운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논리다.

그동안 물신(物神)에 현혹되어 빗나간 우리들의 인성이, 오늘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제 자리로 돌아오려면 먼저 삶의 가치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서야 한다.

▼이웃고통 함께 나누길▼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도리이고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다.

우리들에게 구원이 있다면 추상적인 신이나 부처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을 통해서, 그리고 그 보살핌 안에서 이루어진다.

겨울의 문턱에서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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