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긴급점검②]협력社 살려야 산업네트워크 산다

  • 입력 1998년 9월 28일 19시 22분


지난해 부도 직후 설비 가동률이 20∼30%까지 떨어졌던 광주시 내방동 아시아자동차. 부도처리가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협력업체가 줄줄이 넘어져 뒤늦게 쏟아지는 수출주문에 속만 끓는다.

현재 일부 차종의 가동률은 70%대. 연말까지 수출주문 7천여대를 받아놓았지만 협력업체 도산으로 부품공급 흐름이 끊어지기 일쑤다. 이달 초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7백대나 주문받은 대형버스 ‘하지’의 생산이 협력업체의 ‘반쪽가동’으로 1주일이나 멈췄다.

협력업체 47개사가 자리잡은 인근 하남공단. 정상 조업중인 업체는 전혀 없다. 휴업중인 업체만도 20개. 가동률이 20%에 불과한 I사 직원은 “납품 주문이 들어와도 원자재를 살 현찰이 없어 보통 7∼10일 걸려 원자재를 확보한다”고 호소했다. 공장을 살리려 사람을 줄이다보니 막상 주문이 들어오면 설비 돌릴 직원을 부랴부랴 수소문한다.

공구(工具)등 기초자재 업체들이 줄도산하면서 협력업체들이 애를 먹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수 튜브업체인 M사 관계자는 “시내 공구상가에서 1시간이면 구할 수 있던 특수드라이버를 이제는 서울까지 사람을 올려보내 구입한다”고 푸념했다.

현대자동차가 3개월동안 벌인 휴파업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울산 경제. 연간 매출 수백억원대의 3백여 1차 협력업체들이 밀집한 효문공단은 지난주부터 일제히 임단협을 개시, 분위기가 다시 썰렁해졌다.

노조파업은 현대차와 협력업체들이 ‘한 운명’임을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연초엔 자동차 섀시에 들어가는 10㎝ 길이의 핀을 만드는 D사가 부도를 내 현대는 물론 협력업체 모두 1주일을 쉬었다. 한 협력업체만 공장을 세워도 현대자동차는 물론 다른 협력업체들까지 줄줄이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현대측은 1차 협력업체가 부도위기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행동계획까지 준비해 놓았다. 납품대금을 현찰로 지원하고 그래도 부도가 나면 최우선적으로 ‘금형’을 확보한다. 모기업과 다른 협력업체의 동반 가동중단을 막기 위한 응급조치다.

IMF체제 들어 8월까지 부도난 협력업체는 대략 50개사(2차 협력업체 포함 3백개). 현대차 관계자는 “휴파업에 따른 부도의 충격이 크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앞으로 협력사 부도가 이어질 경우 자동차산업 전체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고 우려했다.

한해 7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W사. 이 회사 P이사는 “대기업의 이기주의가 산업 네트워크의 붕괴를 재촉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납품가를 낮추라는 완성차업체의 요구와 철판 공급가를 계속 올리는 포항제철 사이에 끼어 고사할 지경이라는 것. 그는 “자동차산업에 넌더리가 난다며 이직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중공업 LG전자 등 대기업 생산설비가 몰려 있는 창원공단. 대기업 평균 가동률이 73.8%(8월 기준)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59.1%에 불과하다. 체감가동률은 40%대라는 주장도 있다. 금융위기의 피해를 중소기업들이 훨씬 강하게 받고 있다는 반증.

중기 부도가 계속되자 이 지역 대기업들도 부도대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기업 사이에서 무성하다.

〈박래정·이명재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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