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산에 가면 정겨운 모습 많아

  • 입력 1997년 1월 31일 20시 09분


우리 부부가 한국에서 지낸지 벌써 4년반이 된다. 60세 가까이 살아오면서 줄곧 외국, 그것도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 상당기간을 생활했으니 이제는 외국생활이라면 전문가 수준인 셈이다. 한국이 우리 부부에게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언어문제가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여러 여건상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만큼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 중에는 레저생활 여건의 빈약함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들에게 나는 서울근교의 국립공원으로 등산을 해보라고 권하곤 한다. 산에 가면 다정하고 소박한 한국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을 해보면 이들이 옛날에는 서로 어떻게 대하며 살았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등산은 인구 1천만명이 넘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사라져버렸다고 생각되던 정겨운 모습들, 초고속 경제성장과 번영을 누리기 전의 가난하지만 여유로웠던 서울사람의 모습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눈에는 때때로 어딘가 모순돼 보이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있다. 지하철이나 길에서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밀치며 지나가는 모습과 사적인 자리에서 경험하는 지나칠 정도의 예의바른 태도도 그 중 하나다. 또 짧은 시간내에 재빨리 일을 처리해내는 한국인들의 임기응변 능력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차일피일 회신을 늦추는 공공기관들의 업무처리방식은 이해가 안될 때가 많다. 그러나 이같은 모순 투성이의 한국체험 속에서도 우리 부부의 서울생활은 즐겁고 보람있다. 한국인들은 서양인 하면 무조건 미국인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왔다고 하면 희소가치 때문인지 많은 호기심을 보이며 호감을 갖고 대한다. 이것은 독일과 독일인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해서 흐뭇한 마음이 들곤 한다. 유럽인들에게 한국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처음에 낯설게만 느껴지던 한국의 맛과 향기의 오묘함에 놀라게 된다. 만프레드 오트<독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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