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YS와 복지국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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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하지만 유독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가 있는 것 같다. 바로 복지 분야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복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됐다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기자들조차 YS의 복지 구상에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장을 마치고 YS 시절 문건들을 뒤늦게 뒤적거리다 적지 않게 놀랐다. 1997년 외환위기로 세상의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국민복지 시대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복지’는 국민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복지는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제도’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외환위기 전까지 경제성장률이 7∼8%대에 이르렀다. 성장에 집중했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강하지 않던 시기다. 하지만 YS는 안주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95년 3월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행복기획단’을 출범시키고 복지국가를 향한 로드맵을 설계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당시 기획단 보고서를 살펴보면 YS의 복지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혁신적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 연금권 확대가 대표적이다. 기획단은 이혼 후 남녀가 연금을 나눠 받는 연금 분할 제도를 추진했다. 남성에 비해 노후 준비에 취약한 여성을 위해서다. 이혼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개혁을 구상한 것도 선제적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이 개혁안은 YS 퇴임 후인 1998년 국회를 통과했는데, 15년 뒤인 2013년부터 2033년까지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시 연령이 늦춰지게 설계됐다.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과 교수는 “서유럽에선 연금 개시 연령을 1, 2년만 늦춰도 폭동이 일어난다”며 “YS가 개혁 구상을 하지 않았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인, 공무원이 퇴직 후 국민연금에 가입해도 공직 재직 시절 보험료 납부 기간을 인정해 주는 연금 연계 제도도 YS 시절 계획됐는데, 2009년 8월에야 시행됐다.

YS의 복지국가를 향한 꿈을 되돌아보면서, 정치의 늪에 빠진 2015년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복지, 자기 임기만 버티면 된다는 이벤트성 복지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우발적 구호에 의해 도입된 무상보육은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기초연금도 차후 비슷한 갈등을 겪을 공산이 크다. 서울시, 경기 성남시가 추진하는 청년수당도 장기적 재원조달책이 부족해 보여 걱정스럽다.

우발적 복지가 만연한 반면, 20년 전 YS의 복지 구상에 강조된 내용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 형평성 제고(부과체계 개선), 여성 연금 확대안(보험료 추후 납부 제도)이 대표적이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향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복지정책을 설계하고 묵묵히 추진할 지도자의 부재가 유독 아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김영삼#재조명#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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