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절 빛 못 본 황병서, 황태자 사병 생활 보살피다 고영희 김정은 母子와 친해져
김정은의 다리 고장은 과체중으로 인한 관절염 또는 통풍 가능성
北 통치자금 경제 어려워… 남한과의 대화 절실
북한 인민군 차수 계급장(왕별)이 달린 군복을 입고 인천에 나타난 총정치국장 황병서는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벼락출세를 했다. 그는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인민무력부를 담당하는 13과장을 하면서 황태자 김정은의 군대생활을 은밀히 돌봐줬다. 김정일이 죽은 2011년 인민군 상장에 불과하던 황병서는 올 4월 인민군 대장에서 차수까지 계급장을 두 번 바꾸어 달았다. 9월에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2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일반 사병과 똑같이 1년 6개월가량 군(軍)생활을 했다. 군에서 황병서와 사단장 외에는 아무도 그가 김정일의 아들인 줄 몰랐다. 황병서는 사병으로 입대한 아들을 걱정하는 고영희(2004년 사망)와도 자주 접촉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정은은 그 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5년 과정을 마쳤다. 김정일이 설계한 후계자 수업을 혹독하게 받은 것이다.
아시아경기대회 참가국 45개국 가운데 종합순위 7위면 북한의 국력에 비추어 좋은 성적이다. 북한은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 대비해 1년여 동안 60여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출전시켜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김정은은 취임 초부터 스포츠의 인프라와 선수 육성에 투자를 많이 했다. 김정은은 특히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축구선수들의 연습현장을 두 차례나 격려 방문했다. 이번에 북한 여자 축구는 결승전에서 일본을 3대 1로 꺾었다. 북한은 이를 녹화해 두었다가 방영했다. 한국과 북한이 겨뤄 연장 후반에 한 골을 내줘 패배한 남자 축구 결승전은 방영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여자 축구 우승, 남자 축구 준우승에 종합순위 7위를 확인하고 나서 고위급 3명을 인천에 보냈을 것이다. 개막식에는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았다가 폐막식에 실세들을 한꺼번에 보낸 것도 승리했을 때만 방영하는 북한 TV와 비슷하다. 인천에서 선전한 북한 선수들은 평양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규모 환영식에 참석했다. 김정은 스스로 스포츠를 좋아할뿐더러 인민의 단결과 체제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상력을 발동하자면 김정은은 다리가 불편해 외부 활동을 못하고 TV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지켜보다가 북한 선수들이 선전하자 실세 3인방을 내려보내 남북한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대화의 물꼬를 터 보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1인자인 나 대신에 2인자를 보냈으니 알아 달라’는 티를 한껏 냈다. 스포츠와 평화의 제전에 황병서가 입은 군복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총감독 김정은이 선택한 무대의상으로 보인다. 기골이 장대한 선글라스맨들이 황병서를 감싸고 다녀 중요한 인물임을 알리는 특수효과를 냈다.
김정은은 한 달 넘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 정형외과 의사를 초빙한 것으로 보아 평소 가끔 절뚝거리던 다리에 심각한 고장이 난 것은 분명하다. 정형외과 의사들의 간접진단을 종합해보면 김정은의 다리 이상은 통풍이나 과체중으로 인한 관절염 또는 그 합병증일 가능성이 높다. 통풍은 비만, 과도한 음주, 운동 부족이 원인이고 집안 내력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도 다리 치료를 하지 않고 이곳저곳 현장지도를 다니다가 병증이 악화된 것 같다.
유럽에서 통풍은 잘 먹고 몸을 안 움직이는 왕과 귀족이 잘 걸려 ‘왕(王)의 병’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통풍은 잘못 관리하면 악화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지만 당뇨처럼 잘만 관리하면 천수(天壽)를 누리는 데 지장이 없는 병이다. 요즘은 치료제도 나와 1년만 복용하면 완치도 가능하다. 문제는 김정은에게 살 빼고 운동하고 술 줄이라고 감히 충고할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유럽 의사들까지 초빙돼 갔으니 체중 감량하라는 권고를 강력하게 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다리를 치료하고 나타날 때는 조금 날씬한 모습이 돼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김정은은 유엔 제재와 남쪽의 5·24조치로 통치자금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수용과 강석주가 미국과 유럽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손에 쥔 것은 거의 없다. 중국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김정은도 결국 기댈 데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김정은은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날 실세 그룹을 보내 파격 이벤트를 했지만 쇼만으로는 안 되고 합리적인 제안과 함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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