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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찐찌버거… 솔까말”… 불통의 ‘넘사벽’

입력 2014-01-17 03:00업데이트 2014-03-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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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동아일보-채널A 공동 연중기획]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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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찌버거들아. 개드립 그만 치고 김천이나 가자.”

서울 송파구 방이동 A고교 1학년 이모 군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뜬 메시지다. 평범한 중장년층이 이 대화를 본다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10대 청소년들의 대화를 온전히 알아듣기 위해서는 통역에 가까운 수준의 해석이 필요하다.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같은 은어는 그나마 널리 알려진 편.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그들만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은어는 또 다른 은어를 낳는다. ‘찐찌버거’는 ‘찐따, 찌질이, 버러지, 거지’에서 한 글자씩 따온 비속어다. 찐따는 ‘6·25전쟁 때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은 사람’을 낮춰 부른 데서 비롯됐다. 찌질이는 ‘지지리(지긋지긋하게)도 못난 놈’이란 뜻이다.

‘김천’은 많은 청소년에게 행정구역인 경북 김천시가 아닌 분식점 ‘김밥천국’으로 통한다. ‘엄카’(엄마의 신용카드)로 끼니를 빠르게 해결하는 곳이다. ‘개드립’은 개(犬)와 애드리브(ad lib·즉흥적인 대사)의 합성어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할 때 던지는 핀잔이다.

청소년의 은어 사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세대간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잘못된 언어습관을 익히는 것도 문제지만 부모와 자녀, 학생과 교사 사이의 소통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은어 사용이 크게 늘어난 배경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높은 보급률에서 찾는다.

○ 은어 못 쓰면 ‘왕따’




“재밌어서 쓰기도 하고, 너무 바르게 말하면 좀 만만하거나 재수 없어 보이잖아요.”

국립국어원이 2012년 전국 초중고교생 60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9.2%(6002명)가 은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학생들은 주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은어를 쓴다고 답했다.

은어는 은폐의 수단이기도 하다. 청소년에게 금지되는 사물이나 행동을 묘사한 은어가 많은 이유다. ‘ㄷㅂ’(담배), ‘셔틀’(심부름꾼), ‘슴가’(가슴) 같은 말로 성(性)에 대한 관심이나 비행을 감추려 한다는 것이다. 장경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은어는 뜻을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기성세대와 청소년의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킨다”면서 “은어를 쓰지 않는 청소년에게 소외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집단따돌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 인터넷·SNS 타고 일파만파

‘명퇴’(명예퇴직),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EDPS’(음담패설) 같은 은어는 지금의 중년층에게 제법 친숙한 표현이다. 이보다 앞서 1980년대에는 ‘장희빈’(장안에서 희귀한 인간 빈대), ‘물로 보다’(하찮게 생각하다) 같은 은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은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고 때로는 세태를 반영한 풍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이 활발해져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한 은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작가 이외수 씨(68)가 트위터에 쓴 ‘존버 정신’(×나게 버티는 정신)이란 말은 팔로어 160만여 명을 통해 순식간에 온라인에 퍼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어휘를 사용해 관심을 모으려는 사용자들의 심리가 숱한 은어와 신조어를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 무조건 ‘쓰지 말라’보다는 이해·순화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은어 사용을 무조건 나무라기보다는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어가 모두 부정적인 뜻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이 빠질 만큼 값비싼 옷들) 등 자성적인 의미를 담거나 ‘별다방’(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 외래어를 한글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치맥’(치킨과 맥주)과 ‘고터’(고속터미널)는 이제 고유명사에 가까울 정도다.

다만 인신공격이나 욕설을 담은 비속어에 가까운 은어는 사용을 자제하도록 이끌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황경익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사는 “젊은이들이 쓰는 은어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세대간 원활한 소통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하지만 욕설에 가까운 은어는 원래 뜻과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고 순화된 표현을 쓰도록 유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하종대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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