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민주화 성지’ 카이로를 가다]“우리가 꿈꾼 혁명은 아직 안왔다” 시위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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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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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리면서 북아프리카 중동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떠오른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이 다시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

6월 29일 오전 찾아간 타흐리르 광장은 대규모 시위로 혼란스러웠던 5개월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날 시민 5000여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군경과 충돌한 대규모 시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위대가 던진 보도블록은 작은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고, 경찰이 시위 진압에 사용한 고무총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철제 바리케이드도 눈에 띄었다.

전날 오후부터 시작된 시위는 이날 아침까지 이어질 정도로 격렬했다.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군경이 최루탄과 고무총탄 등을 사용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하룻밤 사이에 무려 1000여 명이 다쳤다.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많이 다친 환자만 120여 명에 이른다. 이번 시위는 1월 25일부터 18일간의 민주화 시위 끝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이집트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다.

경찰이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삼엄하게 감시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6월 29일 오후부터는 타흐리르 광장에 주저앉아 무기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기기 이브라힘 씨는 뉴욕타임스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민주화 시위 시작일인) 1월 25일 당시와 비슷하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에도) 변화는 오지 않았고, 군 최고위원회도 우리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날인 30일 오전에도 타흐리르 광장에는 5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날 경찰은 보이지 않았지만 극심한 차량 혼잡이 빚어졌다. 시위대를 응원하기 위해 빵을 전달하는 어린이도 보였다. 기자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가자 30여 명이 에워싸고 “우리 얘기를 전달해 달라”고 외쳤다. 일부는 기자에게 “프레스카드(신분증)를 보여 달라”며 의심하기도 했다. 광장에서 만난 시민 알리 씨(35)는 “경찰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현지 신문엔 경찰이 칼과 돌을 들고 시위대를 진압하는 사진과 여성이 최루탄 가스에 질식해 쓰러져 있는 사진 등이 실렸다. 주최 측은 “1일에 백만 인 시위를 하자”고 선동했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이끌며 무바라크 퇴진까지 끌어냈지만 다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4·6청년운동’ 관계자는 “다음 달로 예정된 연좌농성을 6월 29일로 앞당겼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확실해질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긴급조치법의 즉각적인 폐지와 내무장관 재무장관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한편 이집트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군부는 사회혼란을 노리는 세력들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행동이라고 비난하며 시위에 동참하지 말 것을 국민들에게 촉구했다. 군 최고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충돌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이번 시위는) 이집트의 안보와 안정을 해치려는 목적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고 비난했다.

신나리 기자
신나리 기자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이후 이집트는 군부의 감독하에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 혁명으로부터 근 5개월이 지났지만 국민들의 불만은 가라앉기는커녕 높아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 무바라크 정권 시절의 과오 청산과 이후 집권한 군부의 개혁 작업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실망감이 크다. 1000여 명이 부상한 이번 시위도 군 최고위원회가 부정부패 및 시위대 학살 혐의자에 대한 처벌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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