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던 상처 다시 할퀸 그리스… 세계경제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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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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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의 무법자’ 그리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의 2차 구제금융 방안과 유로존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위험한 도박’을 결정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재차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스 악재에 국내 증시는 2일 장중 한때 5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는 등 요동쳤다.》

○ 흔들리는 금융시장

2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1.62포인트(0.61%) 떨어진 1,898.01로 거래를 마쳐 5거래일 만에 1,800대로 내려앉았다. 전날보다 39.12포인트(2.05%) 급락한 1,870.51로 출발한 뒤 오전 한때 49.80포인트 폭락한 1,859 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가 그리스 여파로 2∼6% 급락한 것이 악재가 됐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면서 오후 들어 낙폭을 만회했다.

환율도 사흘째 올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8원 오른 1121.8원에 거래를 마쳤다. 위험지표들도 일제히 상승했다. 2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28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전 수준인 1.27%까지 떨어졌다가 1일 1.53%로 다시 치솟았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한국 정부 채권의 수익률인 외평채 가산금리도 반등하고 있다. 2014년 4월 만기 외평채 가산금리는 28일 1.62%로 8월 4일(1.55%)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지난달 31일에는 1.67%로 상승했다.

○ 금융·실물 위험요인 다시 터지나

최근 상황은 유럽 재정위기의 전염 가능성, 경기침체 우려 등 악재를 ‘그리스 호재’로 간신히 봉합하고 있는 상태였다. 유럽이 그리스를 지원하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고비를 넘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커졌던 것.

하지만 ‘국민투표 도박’으로 그리스의 운명이 불투명해지면서 금융과 실물의 위험요인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그동안 유로존 국가들이 구체화한 재정위기 대응책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며 “2차 구제금융 방안이 거부되면 ‘무질서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그리스가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이탈리아도 불안해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6%를 웃돌면서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채금리 차는 유로존 출범 이후 최고치인 4.42%포인트에 이르렀다. 이탈리아 정부가 적자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경제를 부양하지 못하면 국채금리가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국채 금리가 7%를 넘어서면서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미국에서는 ‘MF글로벌’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유럽의 위기가 미국으로 전염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가시화되면 미국에 진출한 유럽계 은행이나 유럽 국가 국채에 대거 투자한 미국 은행들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경기 상황도 불안하다. 지난달 3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에 따르면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은 1.6%로, 5월 발표한 2%보다 낮아졌다. 내년 성장률은 0.3%로 제로 성장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기도 예상보다 나쁜 상황이다.

○ 파국까진 가지 않을 듯

그리스 문제가 불거지면서 안도랠리를 즐기던 국내 증시도 단기적으로 충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유럽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 개연성은 작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그리스가 구제금융 방안을 놓고 실제 국민투표를 실시하더라도 국민이 디폴트로 가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스러운 분위기가 진정되면 유럽 금융시장이 결국 안정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훈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리스 사태는 MF글로벌 파산보호 신청 이후 증시 불확실성을 자극하는 요인”이라면서도 “이번 사태로 글로벌 정책공조 의지가 강화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는 매우 높아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민투표 실시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인 데다 그리스가 시간만 낭비하다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무질서한 디폴트에 직면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그리스의 국민투표 실시 계획이 조기에 철회되지 않으면 그동안의 재정리스크 해소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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