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환자 ‘마지막 얘기’ 듣는 한국계 목사…“이들의 공통 주제는 후회”

  • 뉴스1
  • 입력 2023년 9월 20일 14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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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준 박(41) 목사의 사연을 미국 CNN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 보도 갈무리
미국 플로리다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준 박(41) 목사의 사연을 미국 CNN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 보도 갈무리
미국의 한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수천명의 환자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국계 목사 준 박(41)의 사연을 미국 CNN방송이 19일(현지시간) 집중 조명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탬파 종합병원의 원목인 박 목사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그는 환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들이 생각난다면서,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대화를 함께 공유하며 서로가 치유받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환자들의 사생활이 보호가 되는 선에서,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들을 공유한다.

박 목사는 암에 걸리기 전 음악가가 되기를 꿈꾸며 길거리에서 지내던 한 청년이 기억난다고 했다.

청년은 임종 직전 박 목사에게 “꿈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며 생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집에 대한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려줬다.

갓 태어난 세쌍둥이를 한꺼번에 잃은 엄마도 있었다. 그는 박 목사 앞에서 죽음 전 매우 큰 비명을 내질렀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겁에 질린 10대 소녀는 자신이 죽지 않게 기도해 달라며 간절히 박 목사의 손을 잡기도 했다.

이처럼 박 목사는 지난 8년간 1040개 병상 규모의 미국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으로 활동하며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유년시절 극단 선택 시도…“이야기 속에 치유”

자칫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직업인만큼 지칠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누구보다 절망감을 잘 알기에 자신의 적성엔 이 직업이 잘 맞다고 그는 말했다. 어린 시절 자신 역시 아동 학대의 피해자였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입원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라르고에서 한인 이민자 2세로 살아온 그는 종교적 차이가 크고 권위를 중시하는 부모 밑에서 신체와 언어적 학대를 당했다고 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고, 치료 과정에서 영성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는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지쳐 있었고 우울했다”며 “어떤 것에 몰입하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상담 치료와 깊은 성찰,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고통이나 아름다움을 전하는 세상으로의 관문이 될 수 있겠단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이에 2008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레스트의 신학교에 등록을 했으며 목사로서 사람들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깊고 공감적인 관계 형성이 됐다고 전했다.

신학교 졸업 이후엔 자신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준 박(41) 목사의 사연을 미국 CNN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 보도 갈무리
미국 플로리다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준 박(41) 목사의 사연을 미국 CNN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 보도 갈무리
그는 자신이 삶에서 겪어온 일들을 통해 환자나 그 가족들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됐다면서 “원목으로 일하면서 어떤 목적도 없이 오로지 완전한 연민과 이해로 상대를 보고, 듣고, 그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죽음을 앞둔 이야기를 들으며 “모든 환자들과 함께 지내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그 이야기 속에 치유가 있다”고 했다.

자신을 성직자(priest)와 치료사(therapist)의 중간 성격인 ‘치료 목사’(therapriest)라고 표현한 그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박 목사는 “부분의 대화는 정신 건강에서 슬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며 “우리는 신앙과 죽음 사이의 어떤 공간에 있고, 환자들이 대화를 원할 때 어떤 형태로든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존재 의의를 설명했다.

박 목사는 죽어가는 환자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주제는 ‘후회’라고 했다. 대부분의 후회는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했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것이 늘 우리의 잘못은 아니고, 때때로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시스템, 주변 문화가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죽음을 앞둔 이들이 마지막 순간 후회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마침내 자유를 찾은 환자를 온전히 봐주고 들어주는 것이 내 희망”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죽음을 앞둔 이들은 남는 이들에 대해서도 걱정한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없이도 괜찮을까”, “엄마는 누가 돌봐줄까”, “나 없이 아들과 딸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등등 남겨지는 이들에 대해 죽음의 문턱 앞에서 걱정한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이들의 걱정에도 모두 공감하며, 이러한 걱정들 역시 이야기를 통해 치유할 수 있는 발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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