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러 사이 줄타기 인도 우크라전 중재할 수 있을까

  • 뉴시스
  • 입력 2022년 11월 7일 1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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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해온 인도가 실은 중요한 계기마다 배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 및 서방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세계 최대 국가로서 걸맞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 당국자들이 때가 오면 인도가 우크라이나 휴전 중재 역할을 맡을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현재로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는 점이 문제라고 NYT는 지적했다.

지난 유엔과 튀르키예가 주도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계획을 러시아에 설득하는 과정에서 인도가 러시아를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달 뒤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를 포격해 핵 재앙 우려가 커지자 인도가 다시 개입해 러시아에 물러서도록 요구했다.

이처럼 인도는 소리 나지 않게 중요한 전기 마다 역할을 해왔다. 이번 주 인도 외교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경제 및 정치 협력을 논의한다. 이를 두고 외교관들과 전문가들이 인도가 러시아를 설득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도록 할 수 있을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도 당국자들도 이미 적당한 때가 되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인도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협상할 생각이 없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우크라이나는 그렇다 쳐도 러시아도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다. 다만 올 겨울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러시아의 공격으로 전기 공급이 크게 부족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생활이 비참해지고, 유럽이 에너지 위기로 고통을 겪으면 종전 내지 최소한 휴전 합의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도 일부 제기된다. 이 때가 바로 인도 등 중립적 입장을 표방해온 나라들이 중재에 나설 수 있는 계기다.

연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양국이 평화협상을 개최하자고 제안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마크롱의 제안 사실은 인도가 중재자로서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왔다. 냉전이 극성이던 1950~60년대 인도는 비동맹회의 주도국으로 동서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현재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세계 5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인도지만 여전히 지정학적 줄타기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도 러시아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막대한 석유와 무기를 공급받는다.

강력한 지도자로서 위상을 즐기는 모디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도 좋아 언제든 그와 직접 통화할 수 있다. 마크롱이 모디에게 공동 중재를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가 러시아 석유 수입을 늘리고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비난 결의에 기권하는 등으로 서방은 인도를 압박해왔다. 이에 대해 인도 당국자들은 비공개 석상에서 러시아를 비난해봤자 소득이 없고 중립을 지키면 전쟁을 끝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해왔다. 이런 입장에 따라 인도는 전쟁의 폭력 사태와 고통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정도의 입장 표명에 그쳐 왔다.

지난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지역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 세계가 고유가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지금은 전쟁을 할 시대가 아니다”라면서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방안을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모디 총리는 비동맹 주도국으로서 과거 인도의 위상을 부활시키고 싶어 한다. 국제 질서에서 평화를 증진함으로써 세계 질서에서 인도의 역할을 강조하고 공정한 권력 배분자로서 평판을 확보함으로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길 원한다. 모디 총리는 이를 달성함으로써 인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야망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중재 역할을 요청했을 때 인도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떼어주어야 할지, 휴전 감시 역할을 누가 맡을지 등 서방이 무엇을 원하는 지가 분명치 않다고 밝혔었다. 마크롱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고도 했다.

인도 당국자들은 최근 인도가 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이 “어떻게 하면 전쟁 중인 양국을 협상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할 것”이라고 했다.

핵외교 분야 박사학위를 가진 자이샨카르 장관은 인도 외교정책의 설계자요 실행자다. 대학교에서 강의도 자주하는 그는 2020년 저서 “인도의 길”에서 “노골적인 이기주의적 세계”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에 따라 인도의 번영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는 히말라야 지역 국경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중국을 제1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 점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인도의 입장을 가장 크게 좌우한다. 인도는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려 들지 않으며 유엔 총회 결의 기권도 이 때문이다. 서방에 대한 최대 비판자들인 러시아와 중국은 인도와 “특별한 관계”라고 말하며 인도는 러시아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걸 원치 않는다.

뉴델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 연구소 라자 모한 선임연구원은 인도가 러시아가 전쟁에서 서방과 중재를 해줄 “친구”를 찾을 경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인도와 중국에 대해 “밀접한 동맹국이자 협력국이며 우리는 그들의 위상을 존중한다”고 말해 왔다.

외교가에서는 인도가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중립국들과 함께 중재에 나서는 방안도 거론된다. 케네스 저스터 전 주 인도 미 대사는 “세 나라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하도록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다”면서 인도 외교관들이 뛰어나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 준비가 되면 인도가 중재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입은 피해는 엄청나게 커졌다. 이 때문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가 협상을 거부한다. 우크라이나는 또 인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러시아 석유를 수입해 러시아를 재정적으로 돕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영 TV 편집국장 유리 마카로우는 인도가 평화 중재를 검토한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인도가 우크라이나 상황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차라리 이스라엘이나 튀르키예가 협상을 중재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없애려 한다. 슬프게도 협상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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