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국군의날이 아니라 건국기념일에 열병식 하나?

  • 뉴스1
  • 입력 2019년 9월 30일 1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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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문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선포를 선언하고 있다. -바이두 갈무리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문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선포를 선언하고 있다. -바이두 갈무리
한국군은 열병식을 주로 건군기념일인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한다. 그러나 중국은 건군기념일이 아니라 ‘건국’기념일에 주로 열병식을 한다. 중국도 건군기념일에 열병식을 전혀 않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로 건국기념일에 하는 것이 관례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건군기념일은 1927년 8월 1일이다. 당시 공산당은 최초로 군사조직인 ‘중국공농홍군’을 출범시켰다. 이후 여러 번 이름이 바뀐 끝에 1947년 인민해방군(이하 인민군)으로 개칭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약칭으로는 ‘홍군(紅軍)’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건군을 기념한다면 8월 1일 군사 퍼레이드인 열병식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중국은 건국기념일인 10월 1일 국경절에 열병식을 거행한다. 이는 공산 중국의 아버지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에 입성, 천안문 문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군은 주로 농촌을 무대로 활약을 했기 때문에 베이징 시민들은 홍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공산당은 천안문 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함으로써 인민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쓴 것이다.

이후 인민군 열병식은 1949년부터 1959년까지 매년 개최됐다. 그러나 이후 대약진 운동 실패로 인한 대기근, 문화혁명 등이 발생하면서 열병식은 유명무실해졌다.
1984년 덩샤오핑이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 바이두 갈무리
1984년 덩샤오핑이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 바이두 갈무리

그러던 열병식을 부활한 장본인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나라가 조금 안정되자 1984년 국경절 3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부활했다. 이후 매년 국경절 열병식이 거행되고 있다.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던 1989년에도 열병식은 거행됐다. 천안문 사건 당시 인민군은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발본색원했다. 공산당은 1989년 열병식에 무기를 동원하면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며 무기를 배제한 채 열병식을 진행했다. 무기 없이 진행된 유일한 열병식이었다.

2019년 10월 1일 열병식은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으로, 사상최대 규모로 치러지며,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41’이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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