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 기반 마련한 이집트 대통령…‘아랍의 봄’ 흔적은 어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7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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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이집트를 철권통치 중인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65)이 2030년까지 이집트를 ‘장기집권’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16일 이집트 알아흐람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집트 의회는 이날 현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3연임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헌안은 이달 22~24일 국민투표를 거쳐 최종 발효된다.

이로써 2014년, 2018년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9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시시 대통령은 이변이 없는 한 최소 2024년, 최대 203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게 됐다. 시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집트 의회는 이번 개헌안도 전체 재적 의원 596명 중 찬성 531명, 반대 및 기권 23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집트 시내 곳곳에서는 개헌안이 의회를 통과히기 전부터 국민투표를 독려하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내걸렸다. 2011년 중동, 북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민주화 혁명 ‘아랍의 봄’ 당시 수십만 명의 이집트 시민들이 시위를 벌여 30년 군부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 낸 ‘민주화운동의 성지(聖地)’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날 수도 카이로 시내에서 만난 나다 요세프 씨(26)는 “이집트에서 더 이상 민주화 열기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시시 대통령은 2013년 쿠데타를 통해 이집트 최초 민간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의 민선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하며 철권 통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3월 재선에 성공했고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현행 대통령 임기(4년)를 늘리고, 3연임 제한하는 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개헌안에는 시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시시 대통령 권력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군을 ‘국가와 민주주의, 헌법의 보호자’로 규정하며 군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대통령에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검찰청 수장의 임명권을 주고, 2014년 폐지됐던 상원을 복구한 뒤 전체 180석 중 3분의 1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날 알리 압델알 국회의장은 “개헌안은 다양한 시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로 이집트의 정의와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이집트 시시 대통령이 30년 독재자인 무바라크 전 대통령보다 더 잔혹한 통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이 ‘수십 년 만의 최악의 인권 위기’라고 표현할 정도다. 시시 대통령은 정부 정책 및 인사를 비판하는 언론인, 인권운동가 등을 가짜뉴스 유포혐의로 체포하고, 팔로어가 5000명이 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언론으로 간주해 감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노란조끼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아예 이집트 전역에 ‘노란조끼 판매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현재 이집트에서는 최소 6만 명 이상의 정치범이 수감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18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이집트는 180개국 가운데 161위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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