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배고픈 자유보다 배부른 독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옛 공산국가 ‘新독재 포퓰리즘’

1988년 헝가리에 아직 소련군이 주둔해 있던 시절, 한 25세 청년이 당시 유명 반체제 인사이자 작가였던 미클로시 허러스티를 찾아왔다. 이 청년은 공산주의청년연맹과 맞서는 민주주의청년연맹을 만들어 이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르반 빅토르, 그가 이끈 연맹은 피데스였다. 1년 뒤 이 연맹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정당이 됐다.

30년이 지난 8일 헝가리 총선에서 피데스는 1당을 차지하고 오르반 총리는 3선 연임이 유력하다. 1998년 집권까지 포함하면 4번째 총리직이다.

그 사이 피데스도, 오르반 총리도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경찰을 앞세운 공포정치, 외부 서방 국가를 적으로 내세운 폐쇄정책,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는 분열 행위 등 그가 청년 시절 그토록 걷어치우려 했던 독재 공산주의의 ‘철의 장막’을 그대로 답습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2당이 유력한 요비크당의 마르톤 죈죄시는 “오르반의 3연임은 헝가리를 소프트한 독재국가에서 완전한 독재로 데려갈 것”이라며 그 예로 “피데스를 지지하지 않는 모든 이는 선거 후 도덕적 법적 정치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그의 유세 발언을 들었다.

오르반 총리는 2011년 의원 수를 386석에서 199석으로 줄이면서 여당에 유리하게 선거구 획정을 다시 했다. 야당 지지자들의 결속력을 줄이기 위해 결선 투표제도 없앴다.

오르반 총리는 6일 선거 전 마지막 유세에서 유엔, 유럽연합(EU),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를 3적으로 규정했다.

정책 역시 과거 공산주의 국가처럼 기업을 최대한 국유화로 틀어쥐고 분배를 중시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 2010년 집권 이후 그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연금과 최저임금 인상, 가스·전기요금 삭감, 은퇴 후 현금 선물 등 선심성 정책을 폈다.

이런 오르반 총리를 버티게 하는 힘은 경제성장이다. 헝가리는 지난 4년 동안 평균 연봉은 매년 10% 이상 올랐고, 경제성장은 연 4%를 달성했고, 실업률은 4% 미만으로 떨어졌다. 1990년대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하면서 공장, 농장, 기업, 집이 사유화되고, 외국인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제조업이 무너지고 실업률은 급증하는 혼란을 겪은 헝가리 국민의 마음을 잡았다.

체제 전환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모두 시행착오를 겪은 옛 공산국가들은 최근 글로벌 호황과 개발붐을 타고 경제 호황을 누리면서 ‘신독재 포퓰리즘’으로 향하고 있다. 국민들은 상당한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먹고살 만한 재산과 사회 안정을 제공하는 독재 정부와 사회계약을 맺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란드의 법과정의당 역시 사법부까지 무력화시키며 독재의 길로 들어서는 대신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고, 아이 수당은 늘리며 최저임금은 올리고 있다. 루마니아도 리비우 드라그네아 대표가 이끄는 사회민주당 지도층의 부패 혐의가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지만 6% 넘는 경제성장으로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동유럽 경제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2004년 EU 가입 이후 받은 경제 지원이었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EU와 계속 각을 세우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옛 공산국가#신독재 포퓰리즘#동유럽#배고픈 자유#배부른 독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