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회 권한 침해하면 안돼” 英 여당의원 11명의 ‘반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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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하원, EU탈퇴법 수정안 가결
브렉시트 협상안 의회 표결권 강화… 반란 의원들 “나라와 헌법이 우선”
메이, EU와 협상 앞두고 치명타… 총리실 “표결 결과에 실망” 불만 토로

“오늘 밤 나는 내가 속한 정당에 앞서 나라와 헌법을 우선시했고, 의미 있는 투표를 던지겠다는 나의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집권 영국 보수당의 스티븐 해먼드 의원은 13일 유럽연합(EU) 탈퇴법안 표결 이후 ‘반란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부의장에서 해임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영국 하원은 이날 집권 보수당 도미니크 그리브 하원 의원이 발의한 EU 탈퇴법안 수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309표, 반대 305표로 가결시켰다.

정부와 보수당 주류 세력이 추진해온 정부안 대신 수정안이 가결되면서 테리사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행보와 관련해 큰 패배를 당했다. 14일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에 참석해 브렉시트 공식 협상을 선언하려던 메이 총리로서는 하루 전 치명타를 맞은 셈이 됐다.

총리실은 “표결 결과에 실망했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수정안이 가결된 뒤 보수당의 네이딘 도리스 의원은 “반란을 일으킨 의원들은 공천을 배제하고 다시는 보수당 의원으로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이를 갈았다.

메이 총리가 반대한 수정안이 가결된 것은 야당인 노동당(259석) 등이 똘똘 뭉친 데다 집권당(316석) 내에서 반란표 11표가 쏟아졌기에 가능했다. 수정안을 제출한 이도 집권당 의원이고, 이를 가결시킨 결정타도 집권당 의원들이 날린 셈이다. 집권당 내 반란군들은 정부가 의회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삼권분립 정신을 중시하고, 수정안이 정부안보다 더 영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표를 던졌다.

정부안과 수정안의 핵심 쟁점은 브렉시트 최종 협상안에 대한 의회 권한과 관련이 있다. 정부안은 1972년 만들어진 유럽공동체법을 폐기하고 2019년 3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날 1만2000개에 달하는 EU 법규를 영국 법규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U 탈퇴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드는 성격이었지만 각료들에게 탈퇴 협정 이행에 관한 행정명령 권한을 허용한 게 문제가 됐다. 반면 수정안은 의회가 다른 법안을 통해 탈퇴조건 이행을 정한 경우에만 각료들의 행정명령 권한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의회의 실질적인 표결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메이 총리는 “영국이 EU를 떠나기 전 의회가 최종 합의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지만 의회는 더 확실한 표결권 보장을 요구하며 맞섰다.

메이 총리는 올 1월에도 의회 투표 없이 브렉시트를 발동하려다가 대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체면을 구겼다. 당시 영국 대법원장은 판결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갖지만 법적 권한은 분명히 의회에 있다”며 의회 표결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 여론과 무관하게 삼권분립에 따른 법적 절차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판결이었다.

EU 의회 수석 브렉시트 코디네이터인 기 베르호프스타트는 13일 영국 하원의 EU 탈퇴 수정안 가결과 관련해 “시민들의 이익이 좁은 정당 정치를 이긴, 민주주의에 경사가 된 좋은 날”이라는 트위터를 올렸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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