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견제 위해 이스라엘과 연대?… 사우디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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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맹주 사우디, ‘이’-‘팔’ 분쟁속… 공공의 적 ‘이’와 손잡는 위험한 행보
이란에 강경대응 천명하면서 구체적 계획-방법도 못 내놔
외신 “무함마드 조만간 왕위 계승”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를 중심으로 최근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시아파의 주축으로 지역 헤게모니를 놓고 경쟁하는 이란과 맞서며 아랍권 전체의 주적인 이스라엘과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알자지라방송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최근 자국 내 왕자와 고위 정관계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등 여러 금기를 깨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다 이란과 맞서기 위해 이스라엘과 가까워지는 것도 금기 파괴에 포함된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최근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는 이란과 헤즈볼라(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 남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장단체)를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고위급 회동을 갖고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일각에선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을 용인하거나 직간접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도 적극적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가디 에이젠코트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최근 사우디 매체와 가진 첫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정보를 사우디와 공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랍의 대표 국가 행세를 해 온 사우디가 ‘아랍 공공의 적’인 이스라엘과 손잡는 건 위험한 행위다. 카타르 싱크탱크 겸 교육기관인 도하인스티튜트의 이브라힘 프레하트 교수는 “아랍권의 협조 없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나선다면 그동안 아랍권이 팔레스타인을 놓고 보여 온 입장을 배신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아랍권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로 정통 유대교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사우디에 다녀간 직후 사우디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부른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우디 정부가 쿠슈너가 제시한 이스라엘과의 합의안을 수용할 것을 압바스 수반에게 강요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하트 교수는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딱 맞는 해결책 없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팔레스타인과 사우디 모두에 해롭다”고 평가했다. 사우디가 이란에 대해 강하게 맞서겠다고 주장하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은 언급하지 않아 ‘나토(NATO·No Action Talking Only·말만 많고 실천은 없다는 뜻) 대응’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로선 아랍권 외교장관들과 19일 이집트 카이로의 아랍연맹 본부에서 이란과 헤즈볼라를 비판하는 긴급 회담을 가졌지만 뚜렷한 성과나 대응 계획이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 회담에선 단교 상태인 카타르를 제외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쿠웨이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이란과 헤즈볼라가 지역에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성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란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한편 일부 외신에서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조만간 아버지(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연로한 살만 국왕(82)이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본격적인 ‘무함마드의 사우디’ 만들기를 지원할 것이란 뜻이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이란#이스라엘#사우디#아랍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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