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계승 1위’ 조카 내친 사우디 국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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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들 빈 살만 1순위로 책봉… 조카는 모든 공적 지위 박탈 당해

팔은 결국 안으로 굽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82)이 21일(현지 시간) 제1 왕위 계승자였던 조카를 끌어내리고 친아들을 계승 서열 1위로 책봉하며 부자 왕위 계승의 토대를 닦았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이날 열린 왕위계승위원회에서 위원 34명 중 31명의 몰표를 받아 살만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국방장관(32)이 왕위 서열 1위가 됐다. 종전 서열 1위였던 살만 국왕의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알 사우드 내무장관(58)은 모든 공적 지위가 박탈됐다.

이번 조치로 왕권에 바짝 다가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그동안 실세 중의 실세로 꼽혔다. 군을 지휘하는 국방장관이면서 석유 왕국 사우디의 핵심인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회장을 겸직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왕실 경제·개발위원회 의장이기도 하다. 이런 권력 집중에 그에게는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3월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트럼프의 5월 사우디 방문을 확정지으며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취임 후 해외 첫 방문지로 사우디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숙적인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비난하고 사우디가 이끄는 수니파 연합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최근 사우디가 테러 지원을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하고, 이란을 견제하며 중동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살만 국왕이 80대의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사우디의 30대 국왕으로 즉위할 가능성이 있다. 원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탈피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사우디의 ‘비전 2030’ 정책이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여러 부인을 둔 다른 왕실 인사와 달리 부인이 1명인 점과 외신 인터뷰에 적극 나서는 그의 태도도 사우디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 지도자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호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방장관으로 예멘 공습을 이끌었지만 피해는 누적됐고, 반군 후티와의 평화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그는 지난달 TV 연설에서는 “이란의 목표는 이슬람을 주도하고, 시아파 사상을 퍼뜨리는 것”이라며 “이란과의 전쟁에 나설 것을 맹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란과의 대화는 철저하게 배제한다는 입장”이라며 “사우디와 이란의 종파 분쟁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살만 국왕의 아들#계승 서열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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