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상호]트럼프시대에 북핵 폭주 막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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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제4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의 최대 화두는 미국의 대한(對韓)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실효적 강화 문제였다.

 양국은 미 전략무기의 상시 순환배치 검토에 합의했지만 군 안팎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했다. 김정은의 ‘핵 폭주’를 저지할 특단책과 거리가 멀어 실망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국은 초유의 북핵 위기에 처했는데 미국은 태평하다’, ‘선언문에만 존재하는 확장억제를 과신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속단과 흥분에 앞서 필요한 것은 미국의 핵전략과 확장억제의 실체를 간파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우선 미 전략무기가 다른 나라에 ‘붙박이’로 배치된 전례가 드물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전략·전술적 임무를 수행하는 미 핵전력이 한반도에 고정 배치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가령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은 총 14척에 불과한데 이를 한반도 인근에 상시 배치할 경우 타 지역의 억지력 공백이 불 보듯 뻔하다.

 비용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전략폭격기나 핵잠수함이 한반도에 한 차례 전개하는 데 수십억, 수백억 원이 소요된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이 같은 확장억제 조치를 ‘돈 먹는 하마’로 규정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지도 모른다. 결국 군사 효용적, 경제적 측면에서 전략무기의 상시 배치는 미국이 수용하기 힘든 카드라고 봐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에 가깝다. 확장억제는 동맹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넘어 미국의 패권과 비확산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했는데 미국이 확장억제 조치를 주저한다면 미국의 ‘핵 패권’은 그날로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각국이 대미(對美) 동맹을 철회하고 핵무장에 나서면서 세계 핵질서는 ‘아노미(혼란)’를 넘어 붕괴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선거 유세 기간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 발언을 했던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이를 번복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정치적 선언’으로 넘기면서 핵·미사일 개발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가 김정은 정권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공포감을 북한에 안겨줄 조치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그 일환으로 전시·평시 한반도 작전구역(KTO)으로 전개되는 미국의 전략폭격기나 핵잠수함 등 확장억제 전력을 한미 군 당국의 공동 전력으로 만드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미 전략무기에 대한 한미 공동지휘체제를 구축하자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미 핵전력의 작전 기획과 계획부터 훈련, 사용 결정 등 전 과정에 한미 양국이 ‘50 대 50’ 의사결정체제와 통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핵전력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갖게 돼 사실상(de-facto)의 핵무장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국이 유사시 대북 핵 보복의 결정 체계에 참여할 경우 북한에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 미국은 현 확장억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안보 수요를 충족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의 안보 공약을 불신하면서 비현실적인 ‘핵 맞대응론’을 늘어놓는 것은 한미동맹과 북핵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확장억제의 겉과 속을 잘 들여다보고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안보적 실리와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판단을 위한 냉철한 머리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트럼프#북핵#김정은#미국 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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