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대통령 하야 위기로 내몬 ‘355쪽짜리 보고서’…폭로자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6일 22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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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은 방아쇠가 최순실의 태블릿PC라면 비슷한 시기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하야 위기로 몰아넣은 방아쇠는 '포로가 된 국가(State of Capture)'라는 보고서였다.

355쪽 분량의 보고서는 음세비시 요나스 재무차관의 증언을 토대로 주마 대통령과 인도계 재벌 '굽타 삼형제'의 정경유착을 낱낱이 폭로했다. 주마 대통령은 이 보고서의 공개를 막으려 했지만 2일 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하면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국민적 반발에 직면했다.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보고서를 완성한 사람은 툴리 마돈셀라(54) 전 국민권익보호원장이다. 그는 지난달 14일 7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기 며칠 전 이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마돈셀라는 현재 남아공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핵심 멤버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남아공의 흑백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위해 ANC에 가입한 뒤 노조운동에 투신했다. 이 때문에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치러진 첫 총선에서 ANC 국회의원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정치적인 직무를 맡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다"며 사양했다. 대신 1996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현재의 헌법을 제정할 때 법률자문팀 일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법률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약했다.

주마 대통령이 2009년 그를 국민권익보호원장에 임명한 것도 국민적인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마돈셀라는 이런 기대에 걸맞게 주마 정부의 실정을 가차 없이 비판해 왔다.

2011년 공공사업부 장관과 지방·전통문제담당 장관 그리고 경찰청장이 얽힌 부패 스캔들을 조사해 비위 사실을 밝혀내 이들 3명의 해임을 끌어냈다. 주마 대통령 개인 비리에 대한 고발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주마 대통령이 2014년 자신의 고향 사저 개보수에 국고 2억1600만 랜드(약 183억 원)를 쏟아붓자 보안 조치와 무관한 호화설비 비용은 물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받아들여 9월 국고 환수 조치가 이뤄졌다.

마돈셀라는 3일 이번 보고서가 발표된 뒤 "대통령은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예정된 만남에 나타나지 않는 등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주마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의회에서 보고서 건과 관련해 "마돈셀라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다. 5일 남아공의 24시간 뉴스채널 eNCA는 지난달 6일 마돈셀라가 주마 대통령을 앞에 두고 무려 4시간에 걸쳐 이 문제를 놓고 인터뷰를 했지만 주마 대통령이 헛기침만 해대며 제대로 답변도 못한 녹음파일도 전격 공개했다.

언론이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는 동안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 등 공조직은 역할을 못했지만 남아공에선 정부 기관에 의해 실체가 폭로됐다. 남아공보다도 못한 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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