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르도안 ‘밀월’… 러∼터키 가스관 합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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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와 터키의 신(新)밀월 관계가 러시아 최대 숙원 사업인 ‘터키 스트림’ 가스관 건설 사업 합의를 낳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일 세계에너지총회(WEC) 참석차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하고 흑해를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에 합의했다. 러시아 남부에서 흑해 해저를 거쳐 터키 서부 지역까지 가스관의 길이만 약 1100km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019년까지 2개의 가스관을 건설할 예정인데 가스관 한 개의 용량이 157억5000만 m³에 이른다.

 
터키 스트림 가스관 사업은 경제와 정치 양 측면에서 러시아의 숙원 사업이었다. 2개의 가스관 중 하나는 터키 내수용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시장 수출용이다. 기존 가스관 외에 터키와 그리스 국경 지역에 유럽 국가 공급용 가스 허브를 건설한 후 유럽 각국으로 퍼뜨리는 새로운 루트가 뚫릴 경우 수출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러시아가 대치 중인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을 거치지 않고 유럽 서방국가에 가스를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반대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같은 먼 서방국가의 가스 공급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 같은 이웃 국가에 가스를 중단할 수 있는 새로운 카드도 챙기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협정 조인과 동시에 터키가 수입하는 러시아산 가스에 할인 혜택 제공을 약속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가스관 건설 사업을 서두르겠다고 화답했다.

 지난해 11월 시리아 국경 인근에서 터키 전투기가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후 러시아는 터키 농산물에 대한 전면 금수(禁輸) 조치, 전세기 출항 금지 등 경제 제재를 단행해 양국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올 6월 공식 사과한 후 양국 정상은 8월부터 러시아와 중국, 터키에서 매달 한 번씩 만나며 우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

 이는 터키가 미국과 소원해진 시기와 일치한다.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하며 미국과 한목소리를 내던 터키는 7월 에르도안 대통령의 군부 쿠데타 진압 이후 대대적인 숙청에 제동을 거는 미국과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IS) 퇴치는 미국과 터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만 터키의 또 다른 전쟁 상대인 쿠르드족은 미국의 IS 퇴치 주력군이다.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돼 가는 터키는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국가와 최악의 관계인 러시아에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양국은 가스관 합의 이후 시리아 내전에서 군사적 접촉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동맹 관계이고 터키는 아사드 대통령의 숙적이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지만 러시아는 나토의 최대 적국이다. 터키는 유럽연합(EU) 가입 문제까지 걸려 있어 러시아 쪽으로만 가기도 힘든 처지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터키#러시아#가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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