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西都市報]쓰촨 여행의 별미, 수천년 마을마다 전설과 역사 머물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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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여행의 별미, 옛 촌락 방문…비단길 요충지, 삼국지 배경 등
皇孫도 은거하던 中서부 휴양지…‘중국판 할리우드’로 바뀐 곳도

상리의 얼셴 다리
상리의 얼셴 다리
쓰촨(四川) 여행의 묘미는 오래된 촌락을 방문하는 것이다. 쓰촨에는 천년 넘은 촌락들도 있다.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기와 한 장에도 스며들어 있다.

황룽시(黃龍溪) 촌락,
천년 된 용수나무와 시간이 정체된 곳


황룽시 촌락에는 2000년도 더 된 역사가 있다. 석판으로 깔린 옛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유산을 보면 시대를 넘나드는 듯한 풍광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은 송나라의 항구이자 군사거점이었다. 과거엔 상인과 지식인이 모이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의 할리우드’로 불리는 영화의 고장이 됐다.

쓰촨에 가면 수천년된 고성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랑중 고성.
쓰촨에 가면 수천년된 고성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랑중 고성.
황룽시에는 71곳의 문화재보호구역이 있다. 명조 시대의 댐, 물레방아, 제방 등을 통해 옛사람들의 치수를 엿볼 수 있다. 촌락에는 일곱 개의 사원이 있는데 구룽(古龍)사원, 차오인(潮音) 사원, 전쟝(鎭江) 사원 등이 그 곳이다.

황룽시의 거리는 모두 석판으로 깔려 있다. 물고기 화석 모양의 문양을 넣은 곳도 있다. 관광객 장롄(蔣蓮) 씨는 “명청 시대의 나무 인형, 목조로 된 연극 무대, 그리고 천년 된 용수나무 등을 보면 시간이 정체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업무에 치여 문득 회의가 들자 이곳 황룽시에 한 달가량 머물며 지난 삶을 반추한 결과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상리(上里) 촌락, 옛 비단길이자 역참


상리의 촌락.
상리의 촌락.
상리 촌락은 고대 남방의 비단길이자 야안(雅安) 지역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역참이었다. 샹리는 서로 교차하는 두 강의 안 쪽에 위치해 물산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해져 왔다.

상리에는 효(孝)를 기리는 패방이 유명하다. 패방은 4개의 기둥, 세 칸의 처마와 여러 대로 이루어진 건축물로서 높고 크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 곳에는 또한 고대와 근대에 건축된 다리가 10여 개 있으며 기풍이 제각기 다르다. 그 중 조형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명청 고종 41년에 만든 아치형 돌다리인 얼셴(二仙) 다리다. 높고 낮은 두 개의 돌다리는 룽시강을 가로지르며 샹리를 외부와 잇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낮은 다리에서 방향을 바꿔 높은 다리의 아래쪽으로 강을 따라 내려가면 높고 낮은 두 다리가 교묘하게 닿아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리에서 예술성이 뛰어난 건축물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은 것은 한(韓) 씨 가문의 큰 뜰이다. 온전한 건축물은 문, 창문, 기둥을 연결하는 횡목, 처마의 부조, 투각하여 끼워놓은 조각품 장식이다. 한가 큰 뜰은 도광 시기에 관료가 된 한팅판(韓廷藩)이 고향에 세운 것으로 당시 국가의 관저 설계에 근거해 만들었다.

졔즈(街子) 촌락, 명 황제의 손자가 은거하던 곳


쓰촨의 촌락들은 역사의 축소판이다. 충저우(崇州) 시의 졔즈 촌락은 칭청산의 이웃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쓰촨 서부 제일의 촌락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 곳은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손자 주윤원이 1404년부터 신분을 숨긴 채 한가롭게 생활하며 은거하고 있었던 곳이다. 졔즈의 오래된 석판 위를 걸으며 정신을 집중하면, 다가닥 다가닥 말발굽 소리와 영롱한 은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옛 차마고도의 느낌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말발굽과 은방울 소리는 없지만 시간이 이곳에 정체하여 있다는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석판이 깔린 오래된 거리를 제외하고도 빽빽하게 들어선 상점들 사이에서 전통과 역사의 냄새를 찾아낼 수 있다.

안런(安仁) 촌락, 건물마다 스며 있는 스토리

쓰촨의 안런 촌락.
쓰촨의 안런 촌락.
안런 촌락은 당나라 때부터 있었으며 일부 건물은 청조 말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 안런의 역사 건축물, 고건축물은 상대적으로 온전한 장원으로 건축면적이 약 30만㎡다.

촌락의 편안함이 사람을 도취시킨다. 옛 류 씨 가족이 주택, 상거리, 학교, 찻집 등의 공사를 시작하자, 사람이 살기 시작하고 장사를 하고, 한가로이 돌아다니며,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에 화려하게 채색한 장식과 건물, 벽돌, 기와가 도처에 있으며, 각 공관과 건축물은 남몰래 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석진 곳의 숨은 내막에 말할 수 없는 신비한 역사가 숨어있다.

한 동은 족히 더 되는 공관에는 광활한 생활 문화와 기백과 도량을 담고 있는데 몇몇 사람은 이를 보고 신비하고 존귀한 생활의 상징을 마음과 눈에 담아간다.

뤄다이(洛帶) 촌락, 삼국지 촉한의 역사에서 시작


뤄다이는 삼국지의 배경인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촌락으로 촉한의 마지막 군주 유선의 옥대가 마을 근처 팔각정에 떨어지면서 얻은 이름이다. 당송 시대의 청두 푸링취안(府靈泉) 현(지금의 롱췐이·龍泉驛), 동산의 삼대 마을을 시작으로 차례로 명명하였다. 청나라 시대에 전즈창(甄子場)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천년 촌락과 역사와 문화가 담긴 지금의 이름을 다시 되찾은 뒤로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뤄다이 마을에는 옛 사연들이 많은데 고적과 관련해 널리 알려진 것은 마을의 오래된 길이 청나라의 건축양식을 위주로 하여 한 거리가 일곱 가지 골목의 짜임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둥, 쟝시, 후광, 촨베이, 4대 객가(客家·한족의 일파)의 회관, 객가 박물관과 객가 공원…. 그 중 명실상부한 객가는 고향의 회관이다. 마을 인구 90% 이상이 객가 사람이고 지금까지 여전히 객가의 방언인 하카어로 소통하며 객가의 풍속을 답습해 중국 서부 제일의 객가로 불린다.

화시두스보 기자 두쟝쳰(杜江=) 시친링(席秦嶺)

인턴기자 양천(楊晨) 사진 주쟝궈(朱建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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