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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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신동’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삶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네 차례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로 경기장을 누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는 우승컵을 안긴 수훈 갑이었다. 화려한 개인기로 인기를 누렸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하지만 기자들을 향해 공기총을 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코카인 중독으로 죽을 고비도 넘겼다. 대표팀 감독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는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약물에 취한 마라도나는 치유를 위해 쿠바를 자주 방문했다. 아마 거기서 혁명가 체 게바라와 운명적인 조우를 했을지 모른다. 마라도나는 오른팔에 게바라, 왼쪽 다리엔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복싱 헤비급을 한때 평정했던 마이크 타이슨도 배 왼쪽에 게바라의 얼굴을 그렸다. 마라도나와 타이슨, 경기장과 링 위의 두 악동(惡童)은 자신들의 ‘반항 이미지’에 게바라가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일까.

▷의사였던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쿠바 혁명 이후 동지 카스트로가 관료주의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는 콩고와 볼리비아로 떠나 게릴라 투쟁을 이어간다. 결국 볼리비아의 정글 속에서 정부군의 기습을 받고 39세에 숨졌다. 게바라의 손자인 카네크 산체스 게바라는 생전에 카스트로 형제를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할아버지는 쿠바의 오늘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작가, 연주자였던 손자는 작년 멕시코에서 숨졌다.

▷88년 만에 미국 대통령을 맞는 쿠바 국민의 환영 열기가 뜨겁다. 쿠바 외교부의 한 직원은 “게바라가 살아 있었다면 (오바마를) 환영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사후 49년 만에 유명인의 몸에, 티셔츠와 컵에 얼굴이 새겨질 만큼 자본주의 상품의 총아로 탈바꿈해 전 세계 많은 젊은이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얼마 전 게바라의 손녀를 사칭한 여성 모델이 광고에 세미누드로 나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체 게바라#마라도나#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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