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학-정부, 졸업식 ‘기미가요 제창’ 또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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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 “국가 대신 교가 부르겠다”… 정부 “교부금 받으며 뭔소리” 발끈

붉은 학사모를 쓴 일본 대학생들이 졸업식장에 줄지어 앉아 있다. 한 국립대가 다음 달 졸업식에서 일왕을 찬양하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동아일보DB
붉은 학사모를 쓴 일본 대학생들이 졸업식장에 줄지어 앉아 있다. 한 국립대가 다음 달 졸업식에서 일왕을 찬양하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동아일보DB
일본의 대학 졸업 시즌인 3월을 앞두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 제창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의 충돌이 가열되고 있다. 하세 히로시(馳浩) 일본 문부과학상은 21일 이시카와(石川) 현 가나자와(金澤) 시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립대로서 교부금이 투입되는 중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은 내 감각으로는 약간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모리와키 히사타카(森脇久隆) 기후대 총장이 17일 “졸업식에서 국가 제창을 하지 않고 기존대로 대학의 예전 교가를 부르겠다”고 밝힌 것을 에둘러 비난한 것이다. 모리와키 총장은 “국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제창은) 전통이 있는 노래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 국립대 가운데 올해 졸업식에서 공개적으로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기후대가 처음이다. 하지만 기후대 외에도 적잖은 대학이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내세우며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다음 달 졸업식 때 실제로 어느 정도 국가가 제창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후대는 일본 중부 기후(岐阜) 현의 유일한 국립대학으로 1873년 설립된 사범연습학교가 모태다. 이공계와 의학부가 유명하다. 졸업식과 입학식에서는 기후고등농림학교 시절의 교가인 ‘우리, 유망한 봄으로서’를 부르는 전통이 있다.

일본 국립대의 졸업식 국가 제창 논란은 지난해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국회에서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이) 제대로 실시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6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당시 문부상은 국립대 86곳에 히노마루(日の丸·일장기) 게양과 국가 제창을 공식 요청했다. 시모무라 전 문부상은 “개입이 아니라 요청”이라고 했지만 정부 교부금을 받는 대학들은 의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작년 3월 졸업식에서 일장기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한 국립대는 전체의 14%(응답한 77개교 중 11개교)에 불과했다. 기미가요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72%(55개교)는 ‘국기는 걸지만 국가 제창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14%(11개교)는 둘 다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일본 관공서는 행사에서 기미가요를 공개적으로 부른다. 하지만 대학들의 거부감이 큰 것은 기미가요가 과거 군국주의 시절 전쟁 참여를 고취하는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가사도 일왕 중심의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옛 일본 단가에 곡을 붙여 만든 기미가요의 가사는 ‘천황의 치세는 천대에서 팔천 대까지/조약돌이 반석이 되어/거기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며 일왕 찬양 일색이다.

보수 진영은 1999년 ‘국기국가법’을 만들어 일장기와 기미가요에 법적 근거를 부여했다. 또 학습지도 요령을 통해 공립 초중고교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일장기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게 했다. 이어 지난해 국립대에도 같은 요구를 한 것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대학교#졸업식#기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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