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大, 금융위기 불러온 장본인 돈까지 받아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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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제왕’ 폴슨 4억달러 기부… 제프리 색스, 무분별한 모금 비난

“독일 뒤셀도르프의 선량한 주민들, 특히 중소기업 관련 대출 전문 은행인 IKB가 친절하게도 미국 하버드대 공대에 4억 달러(약 4440억 원)를 기부했습니다. 하버드대가 ‘사상 최고의 기부액’이라고 발표까지 했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교 명칭을 ‘IKB 공대’라고 개명하지 않고,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 씨 이름으로 했네요.”

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사진)가 5일 일간지 허핑턴포스트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모교인 하버드대의 무분별한 기부금 모집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3일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의 4억 달러 기부를 발표하고 공대 이름도 ‘하버드 존 폴슨 공학응용과학대’로 바꿨다. 색스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고 받았느냐”는 것.

색스 교수는 “폴슨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아바커스’라는 헤지펀드 상품을 설계한 뒤 상품이 망하는 쪽에 역투자해 무려 10억 달러(약 1조1100억 원)나 되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지적했다. 이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그대로 폴슨 회장의 수익이 됐다는 것. 그 대표적 피해자가 1억5000만 달러를 날리고 독일 정부의 구제금융까지 받은 IKB 은행이다. 색스 교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학교 이름이라도 제대로 불러 주는 것이다. ‘하버드 IKB 공대’라고 부르자”고 꼬집었다.

에릭 시비언 전 하버드대 의대 교수도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에 보낸 독자 편지에서 “폴슨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장본인 중 한 명”이라며 “하버드는 학교 이름을 이런 식으로 다 팔 건가”라고 따졌다. 이어 “앞으로 아무리 기부금 액수가 커도 적절한 돈이 아니라면 ‘그런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느냐”고 비판했다.

경제매체 마켓워치 등에선 ‘하버드대 기부금이 심화시키는 불평등의 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같은 최고 명문대로 기부금이 몰리면서 중소 규모 대학의 재정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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