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수교반대 시위 대학생, 이스라엘 대통령돼 獨방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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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이스라엘 우정의 기적… 유대인 600만명 희생 과거사 화해
1965년 獨대사 돌맞고 이스라엘로… 독일의 거듭된 사죄통해 우의 다져

“독일과 이스라엘이 과거사를 뒤로하고 화해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올해로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맞은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두고 독일 언론들은 이렇게 평하고 있다.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의 피로 얼룩진 독일과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양국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맞아 11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독일을 방문 중이다.

리블린 대통령은 12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교장관을 만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회복 문제와 최근 출범한 이스라엘 새 정부의 방향 등 현안을 논의했다. 리블린 대통령은 전날 독일 땅을 밟은 뒤 “독일과 이스라엘의 우정이 항상 자연스럽진 않았지만 오늘날 나는 아주 가까운 우리의 50년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에 왔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방문 첫날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을 만난 뒤 베를린의 그뤼네발트 역을 찾아 17번 플랫폼 기념비에 헌화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천 명이 강제수용소로 추방된 곳이다.

리블린 대통령은 “어떤 국가도 반유대 정책과 제노포비아, 극단주의, 종교적 원리주의에서 제외될 수 없다”며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독일인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인지하고 책임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두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서로 어깨를 감싸는 등 친근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리블린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두 국가의 관계가 비약적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1965년 서독과 이스라엘이 수교할 당시 롤프 프리데만 파울스 초대 주(駐)이스라엘 독일대사는 돌과 토마토를 맞으며 이스라엘에 입성했다. 당시 리블린 대통령은 “나치는 물러가라”고 외치던 시위 학생 중 한 명이었지만 이젠 대통령이 되어 독일 대통령과 손을 맞잡았다.

독일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은 과거를 딛고 맺어온 두 국가의 반백 년 우정에 대해 “정치적 기적”이라 부르고 있다.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는 “역사가 주는 트라우마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지만 양국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충분히 정상적”이라고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도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기적(Wunder)”이라고 평했다.

두 나라가 화해의 기적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1952년 서독의 결단으로 진행된 이스라엘 정부와의 나치 피해 배상 합의, 한결같은 독일 정부의 과거사 반성이 있었다. 양국이 외교관계를 맺자 이스라엘 내에서 저항이 일고, 중동 11개국이 독일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1973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서독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1985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을 ‘나치로부터 해방된 날’로 규정하며 화해의 촛불을 밝혔다. 이어 메르켈 총리가 2007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고 하면서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양국은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독일이 가세한 이란 핵 문제 타결을 두고 이견을 내고 있긴 하지만 과거를 딛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하고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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