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뉘앙스差 ‘이중 플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9일 2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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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가 27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에 대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로 희생된 분들”이라고 한 표현에 대해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페이스북에서 “‘인신매매’라는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간접적으로 매춘부라고 상정하는 표현이다. 일본군이 운영했던 성노예의 성격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추정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영어 ‘trafficking’은 강제성을 포함하는 뉘앙스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반면 아베 총리가 일본어로 말한 ‘인신매매’는 ‘부모나 민간업자에 의한 거래’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의 발언은 다음 달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속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언론도 아베 총리의 ‘이중 플레이’를 인정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는 (영어와 일본어의) 이런 뉘앙스 차이를 염두에 두고 (영역할 경우) 미 정부의 표현과 같은 용어가 되도록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는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책임을 일본 정부가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일 밀월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혼네(本音·속마음)를 드러내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주변국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인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내는 명분)조차 거추장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호전되자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한편 북한 핵 문제와 같은 현안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외무성은 일제 강점에 따른 배상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일본의 원조로 한국의 포스코와 소양감 댐 등이 건설됐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20일 국회에서 자위대를 ‘우리 군’으로 지칭했다. 야당 의원의 질책에도 “해외 군대와 공동대응을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군으로 불렀다”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응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한 이후 자위대는 ‘전력(戰力)’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일관되게 유지한 일본의 ‘다테마에’였다.

일본에서는 언론 통제도 강해지고 있다. 평소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의 해설가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 씨는 27일 TV 아사히 뉴스 프로그램에서 “오늘로 (해설가를) 그만두게 됐다”며 정권의 압력에 따른 것임을 암시했다. 스기타 아쓰시(杉田敦) 호세이대 교수는 아베 총리의 최근 언동에 대해 “역사를 반성하면 근린 제국에 발목을 잡혀 일본은 손해를 본다는 게 아베 총리의 속마음”이라고 29일자 아사히신문에서 지적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과 관련해 “분명한 역사인식을 표명해 한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일본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일본이) 아시아와 세계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호기로 삼기 바란다”며 “이 기회를 놓치면 일본 리더십에 큰 손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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