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보수정권 들어선뒤 美민주당과 틀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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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엔 민주서 이스라엘 건국 후원… 리쿠드당 집권이후 공화당과 밀월
유대인 로비단체도 親공화 돌아서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 이후 미국의 최대 맹방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 작년까지 미국이 이스라엘에 준 원조금액만도 총 1210억 달러(약 132조7000억 원)로 그 어떤 나라보다 많다. 국제관계라는 것이 상황마다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점은 지금까진 없었던 일이다.

최근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이란 핵협상’에 따른 시각차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균열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꽤 오랜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칼럼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문제의 칼럼은 2일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인터넷판에 실린 ‘결별(Breakup)’. 필자인 유대 문제 전문가 존 주디스는 이 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밀월관계의 중심축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옮겨간 것이 불화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당과 이스라엘의 밀월관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 시절(1933∼1945)부터 시작됐다. 미국 내 유대인 로비단체 핵심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의 전신이 친유대적인 민주당 인맥을 활용해 이스라엘의 건국과 후원을 끌어낸 것이다.

1990년대 초까지 민주당 쪽에 기울었던 AIPAC는 1994년을 기점으로 공화당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다.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 내부의 정권교체. 1949∼1977년 이스라엘 집권당은 미 민주당의 진보적 노선에 부합하는 노동당이었지만 1977년 이후 38년 중 27년을 보수적인 리쿠드당이 집권하면서 공화당의 주류인 복음주의 개신교 세력과 정치적 공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1994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상하원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당에 의해 장악되면서 AIPAC 내 친공화당 세력의 입지가 공고해졌다. AIPAC 임원진은 레이건 정권 시절인 1982년 처음으로 공화당원을 회장으로 선출한 이후 서서히 친공화계로 바뀌어 갔고 마침내 1995년 사무총장마저 공화당원으로 교체됐다. 여기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이끌어낸 이스라엘 노동당 정부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되면서 AIPAC의 친공화당화를 가속화시켰다.

이스라엘 리쿠드당과 미 공화당의 밀월관계는 라빈 사후 1996년 실시된 총선부터 구체화한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시몬 페레스가 이끄는 노동당을 지원했지만 승자는 공화당의 지지를 받은 리쿠드당의 네타냐후였다.

2001년 9·11 이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이 돈줄을 쥔 공화당 유대인연합회의(RJC)는 공개적으로 네타냐후를 지지했다. 네타냐후는 2008년 공화당 선거 전략가이자 유대인인 론 데머(44)를 최측근으로 기용한 데 이어 그를 미국 주재 이스라엘대사로 파견(2013년∼)해 대미 채널의 가교로 삼고 있다. 1994년 미 공화당의 총선 압승을 이끈 선거전략가였던 데머는 이번 네타냐후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의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은 2008년 J스트리트라는 새로운 유대인 단체를 결성했다. 클린턴 참모 출신인 제러미 벤아미(53)가 회장을 맡은 J스트리트는 AIPAC의 라이벌 단체로 급부상하며 민주당의 이스라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스라엘#미국#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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