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소 20명 모두 조선인”… 열흘간 이용 군인수도 기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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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공개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



자오위제 연구원이 20일 중국 창춘에 있는 지린성 당안관(기록보관소) 11층 역사자료실에서 관동군의 위안부 동원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당안관이 공개한 한 문건에는 ‘위안소에 조선인 위안부가 20명 있는데 모두 국가총동원법에 속박된 이들’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오른쪽). 창춘=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 자오위제 연구원이 20일 중국 창춘에 있는 지린성 당안관(기록보관소) 11층 역사자료실에서 관동군의 위안부 동원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당안관이 공개한 한 문건에는 ‘위안소에 조선인 위안부가 20명 있는데 모두 국가총동원법에 속박된 이들’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오른쪽). 창춘=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20일 오후 중국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 시 난관(南關) 구에 위치한 지린성 당안관(기록보관소) 9층. 인화이(尹懷) 관장은 베이징(北京)에서 온 동아일보 등 한국 언론 취재진에게 기록보관소가 새롭게 해독해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에 담긴 내용을 설명했다.

당안관에 보관된 10만여 건 중 이번에 공개한 일제 만행에 관한 기록은 25건으로 이 중 6건이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다. 이곳에서 20년 이상 연구해 왔다는 자오위제(趙玉潔) 연구원은 “문서 90% 이상이 일본어로 작성돼 있는 데다 현재 쓰이지 않는 일본어도 일부 포함돼 있어 해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일본 관동군이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위만중앙은행과 지점 간의 두 통의 통화 내용이 그중 하나다. 이를 분석하면 일본군이 1944년 12월∼1945년 3월 4차례에 걸쳐 공용자금을 군위안부 항목에 지출했고 그 액수가 당시 53만2000엔에 이른다는 게 무잔이(穆占一) 부관장의 설명이다. 1941년 일본군 베이안(北安)지방 검열부가 작성한 우정검열월보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우정검열월보는 일본군이 군사기밀 등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편지나 전보를 일일이 검열한 뒤 이를 상부에 보고하고 기록한 것이다. 무 부관장은 “일본군이 위안부 조달에 직접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1938년 2월 화중(華中) 파견 헌병대가 관동군사령부에 보고한 ‘난징(南京)헌병대 관할구역 치안회복 상황보고서’에는 난징 우후(蕪湖) 등 8개 시현에 배치된 일본군 규모, 위안부 수, 위안부 1명당 군인 비율, 열흘간 위안소를 이용한 군인 수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우후 지역 군위안부 109명 중에서는 조선위안부가 36명이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당안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자료실 내부와 자료를 외국 언론은 물론이고 외국 연구자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인 관장은 이처럼 자료를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 성과가 공개 가능한 시점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일본 측이 작성한 자료로 확인되는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는 일본에 진실을 알리기 위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인 관장은 “앞으로 한국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기를 희망한다”며 “한국 연구자들의 연구 신청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1층 역사자료실 입구를 막고 있는 두꺼운 철문은 관계자의 지문 인식으로 열렸다. 내부는 철제 캐비닛이 가지런히 갖춰져 있었고 마치 실험실처럼 하얀색 옷으로 갈아입고 신발은 비닐로 감싼 뒤 들어갔다. 자료실은 일정한 온도 습도가 유지되고 특수 도난 방지시설까지 돼 있다고 한다.

자오 연구원이 철제 캐비닛을 돌려 위안부 관련 문서가 있는 곳을 개방하자 800m²가량 면적의 자료실에 역사 문서들이 꽂힌 서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 역사자료실에는 청나라 시대와 일제 중국 침략시기의 자료가 보관돼 있다.

지린성 당안관이 있는 창춘은 일제가 세운 위만주국 수도이자 관동군 헌병대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무 부관장은 “1950년대 헌병대사령부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패망 직전) 미처 불태우지 못하고 땅에 묻어뒀던 문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소장 중인 문서는 총 10만여 권으로 위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민생부, 농업부, 군사부, 관동군헌병대, 중앙은행 등 65개 기관이 남긴 기록물이다. 중국 측은 지난해부터 이곳 자료 중 일본의 중국 침략 관련 자료 해독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잇따라 폭로에 나서고 있다.

창춘=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위안부#위안부 강제동원#중국#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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