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개발지상주의 일단 마침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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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개방 2기 본격 시작

시진핑(習近平)-리커창(李克强) 체제가 개막함에 따라 10년간 중국을 이끌던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시대가 막을 내리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됐다. 후-원 체제의 공과에 여러 평가가 있지만 통시적으로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에서 출발해 장쩌민(江澤民)을 거쳐 30여 년을 이어온 개혁개방 1기 체제가 그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혁개방 1기는 연간 평균 9.9%의 경제성장이라는 성적표로 요약된다. 덩샤오핑이 주창한 선부론(先富論·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라)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으로 이어졌고, 이후 공산당이 자본가그룹까지 껴안는 장쩌민의 3개 대표론으로 확대됐다.

바통을 넘겨받은 후진타오가 분배와 정의를 표방한 과학적 발전관을 내놓긴 했지만 지난 10년은 그 이전 20년간의 개발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임기 내 국내총생산(GDP)은 3.3배가 뛰어 경제규모가 세계 6위에서 2위에 올라섰고, 1인당 소득은 3.1배 뛰었다. 하지만 지니계수(유엔 추정)는 0.43에서 0.55(2011년)로 상승해 심각한 부의 불평등을 드러냈다. 이는 연간 평균 18만 건에 이르는 군중시위로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은 ‘보시라이(薄熙來) 사태’로 불거진 좌파 대 우파 대립에서 볼 수 있듯 정치체제 개혁과 새로운 가치관 모색에 대한 압력으로 불거졌다. 하지만 후진타오 집권 10년 동안 정치 및 사회 개혁 관련 시도는 거의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주리자(竹立家) 중국 국가행정학원 교수가 후진타오 집권기를 ‘황금의 10년’(신화통신)이 아니라 “앞선 세대의 덕을 본 시기”라고 말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과거 30여 년의 개혁개방 패러다임이 소임을 다한 것은 경제와 정치 부문이 부딪힌 한계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7.8% 성장했다. 1999년 이후 처음으로 8% 밑으로 떨어진 것. 글로벌 경기 부진 등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과거 체제가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산당 내부의 정치체제 전문가는 “개혁개방은 정부와 개인관계를 일방통행식 계획·관리에서 쌍방향 자율관계로 바꾼 것”이라며 “하지만 법적으로 이를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례가 2007년 10월 중국의 물권법 제정이다.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행령 등 관련 세칙이 없다. 그는 “지금 농촌에서는 밭에 화학비료를 쏟아 붇는다. 자기 땅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토양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단위면적당 생산단가는 갈수록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부패 고리의 핵심인 거대 국유기업도 과거의 유산이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개발 과정에서 선택했던 정부 개입형 기업 구조는 민주화 과정에서 민간 자율권을 확대하며 해체됐다. 하지만 관료와 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진 중국에선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리궁(北京理工)대 교수는 “관료들이 국유기업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유착 고리 제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중국이 국유기업을 해체하면 민간기업의 시장 진입을 유도할 수 있어 1인당 소득이 10배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혁개방 1기 체제를 마감하고 중속(中速) 성장기에 접어든 중국은 이제 경제에서 법치와 민간의 활력을 보장받고 정치에서는 반부패와 민주화 확대를 요구받는 가운데 개혁개방 2기 체제에 들어선다.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도 17일 폐막 연설에서 “인민민주를 보장하려면 법에 의한 통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변화를 다짐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2기 체제를 끌고 갈 비전은 2020년까지로 돼 있는 샤오캉(小康·그런 대로 살만한 정도)사회 건설로 제시했지만 정치와 사회를 아우를 가치관은 아직도 모색 중이기 때문이다. 당의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제18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가치관이 ‘마르크스주의 대중화’와 ‘애국주의’였다”며 “사회주의 변형 이론에 민족주의, 유가주의까지 결합시켰던 개혁개방 1기 체제를 마감하는 단계에서 마르크스나 애국을 거론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끌고 갈 가치관을 아직까지도 탐색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시진핑#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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