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미션 임파서블 “쿠바수감 비밀요원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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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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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체포 60대 석방 위해 케리 의원-카터 前대통령 등 거물급들 나서 쿠바와 접촉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09년 12월. 쿠바 수도 아바나에 머물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63)가 호텔을 급습한 현지 공안 요원에게 전격 체포됐다. 미 국무부는 그가 쿠바 내 유대인들의 인터넷 접근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쿠바 민주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비밀 요원이었다.

쿠바 당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 한 혐의로 15년 형을 선고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올해 2월 “어떤 협상도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막후에서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수차례 고위급 비밀 접촉을 벌였다고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인터넷판이 최근 보도했다.

뉴스위크 편집자인 R 슈나이더먼이 쓴 ‘아바나의 우리 사람(Our Man in Havana)’이라는 글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킨다. 구출 작전의 총감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작전을 실행한 인물은 최근 차기 국무장관에 내정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으로 배역도 화려하다.

케리 위원장은 2010년 10월 뉴욕의 쿠바 유엔대사관저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교장관과 비밀 접촉을 가졌다. 다음 해 3월 카터 전 대통령이 아바나를 직접 방문해 형으로부터 막 권력을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났다.

케리 위원장은 로드리게스와의 회동에서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실행해 온 대쿠바 민주화 정책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쿠바는 그로스를 석방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이뤘다. 케리는 USAID의 쿠바 민주화 프로젝트가 방만하게 운영돼 예산삭감 등 개혁 작업을 하면서 그로스 구출에도 활용하려 했다.

하지만 케리의 개혁 구상은 USAID 관료들의 ‘밥그릇 걱정’을 샀고 미국으로 탈출한 쿠바 난민들의 후원을 받는 보수적인 의회 인사들에게 알려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화조치를 기대했던 카스트로도 미국의 대쿠바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돌아섰다. 쿠바의 감옥 내 병원에 수감 중인 그로스는 병을 얻어 치료를 받으면서 쿠바 야구 경기나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소진하고 있다고 그의 부인이 전했다.

2008년 대통령 후보 시절 “쿠바와 새 출발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미국 내 쿠바인들의 쿠바 송금과 여행 제한 등을 철폐하는 등 일련의 선제적인 유화 정책을 내놨다. 카스트로 정부가 오랫동안 불만을 표시했던 아바나 미국대표부 앞 네온사인도 껐다. 네온사인엔 “쿠바는 개혁하라”는 등 쿠바 정부가 꺼리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에서 쿠바와의 관계에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로스 석방 협상 결렬 때문이라고 슈나이더먼은 지적했다.

오바마 2기에는 그로스가 석방될 수 있을까. 우선 낙관적인 기대가 가능하다. 우선 비밀접촉의 주인공인 케리가 대쿠바 정책을 좌우하는 국무장관이 됐다. 미국에 구속돼 있는 쿠바인 스파이 5명과 그로스를 맞바꾸는 옵션도 있다.

하지만 ‘재정절벽’으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극복과 이란 핵 문제 등이 산적해 있어 쿠바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강력한 대쿠바 제재를 원하는 미국 내 보수주의도 걸림돌이다.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 씨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 그로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는 앞으로 북-미관계 전망에도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오바마#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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