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격화 시리아 접경을 가다]<4·끝>레바논의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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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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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 끌려갈라… 낯선 사람 보면 겁나요”

이블리아스·베이루트(레바논)=이종훈 특파원
이블리아스·베이루트(레바논)=이종훈 특파원
지난달 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동쪽으로 70km 떨어진 국경 도시 이블리아스의 외곽 주택가 골목. 허름한 가정집의 어두운 골방 구석에 서 있던 시리아 난민 지한 씨(32·여)는 기자 일행을 보자마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지한 씨는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첫 대규모 교전이 벌어진 다음 날인 16일 남편과 함께 자녀 4명을 이끌고 탈출했다. 꼬박 하루를 걸은 뒤 간신히 버스에 매달려 국경을 넘었다. 기자를 안내한 현지인은 “지한 씨의 친척 대부분이 정부군에 체포돼 죽거나 실종됐다”며 “피란 뒤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 카메라를 든 동양인 기자를 보니 신분이 노출될까 봐 갑자기 공포심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 1개(9m²)와 다용도 공간에는 매트리스와 주방용품 몇 개가 전부였다.

레바논의 국경도시 이블리아스 야산에 세워진 천막.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천과 비닐로 얼기설기 만든 천막에는 루마나와 가족 등 10명이 함께 기거하고 있다. 이블리아스=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레바논의 국경도시 이블리아스 야산에 세워진 천막.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천과 비닐로 얼기설기 만든 천막에는 루마나와 가족 등 10명이 함께 기거하고 있다. 이블리아스=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그곳에서 50m 떨어진 야산 입구에는 루마나(18)의 가족 10명이 기거하는 천막이 보였다. 쓰레기장과 길거리에서 주워 온 천과 비닐 등으로 얼기설기 만든 천막이었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레바논인 아흐마드 씨는 “야산 곳곳에 난민 텐트가 많다. 이블리아스에만 1000명 정도의 난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난민 남자들은 농장과 공사장에서 일을 해 하루 10∼15달러 정도를 번다고 했다.

이블리아스에서 국경까지는 불과 5km. 지난달 중순까지 레바논으로 온 시리아 난민은 약 3만 명 수준. 지난달 18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최측근 4명이 반군의 폭탄 테러로 숨지고 다마스쿠스에서 내전이 격화된 뒤 수만 명이 더 몰려들었다. 하지만 레바논에 친인척이 있는 시리아인이 워낙 많아 실제 난민은 훨씬 많다는 게 레바논 국경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돈도 없고 연고도 없는 난민은 주로 베카 계곡의 이블리아스 알마르지 등지에 퍼져 있다. 수니파 신도가 많은 베카 계곡엔 난민 3만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레바논으로 온 난민들은 터키 요르단과 달리 정부 차원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의 실세가 아사드 정권의 집권 기반과 같은 시아파이기 때문이다. 레바논 인구 400만 명(베이루트 200만 명) 가운데 시아파 수니파 기독교가 각각 30% 정도.

이블리아스의 근교 도시 알마르지에 있는 알마르지중학교에는 난민 18가구(어린이 28명등 68명)가 교실 5곳서 기거하고 있다. 이들도 다마스쿠스 폭탄 테러 뒤 정부군의 보복이 두려워 일제히 고향을 등졌다. 그러나 9월 학교가 개학하면 쫓겨나야 할 신세다. 대피소 책임자 자드라하 씨는 “임신한 여성만 3명, 어린이가 28명이나 되는데 냉장고는 1개, 화장실은 2개뿐”이라며 구호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시리아 제2 도시 알레포는 정부군의 대공세로 도시 전체가 파괴돼 생지옥으로 변했다고 외신들이 31일 전했다. 이런 가운데 2일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순회의장국을 맡는 프랑스 정부는 시리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동맹국인 러시아마저 시리아의 위험 등급을 ‘혼란’에서 ‘비상’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자국민 대피 준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시리아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 상황’에 놓인 국가로 변경했다고 리아노보스티통신은 31일 보도했다.
■ 알마르지市 샤무리 시장 “무연고 난민 늘어 市 구호 한계”


알마르지 시(市)의 이마드 샤무리 시장(48·사진)은 지난달 30일 “경제 사정이 어렵지만 난민의 처지가 워낙 딱해 손님 대하듯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해 알마르지의 시민 대다수는 시리아 난민과 같은 수니파. 시 인구는 2만 명.

샤무리 시장은 “알마르지 중학교에서 기거하는 난민이 68명인데, 9월 개학 전에 시리아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이 갈 곳이 없다”며 “일단 임시 캠프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으로 온 난민 상당수는 친인척이나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다”면서 “연고가 없는 난민이 최근 늘어나면서 시 재정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특히 알마르지로 온 난민은 아무것도 없이 몸만 빠져나온 사람이 태반이라고 한다.

이블리아스·베이루트(레바논)=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시리아#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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