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법원, 태어나자마자 결혼한 18세 여성에 사상 첫 조혼 취소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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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혼악습 청산 신호탄 주목

인도 북부 라자스탄 주에 사는 락스미 사르가라 양(18·사진)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법적으로 혼인신고가 된 유부녀였다.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유부녀가 된 것이다. 사르가라 양의 부모는 17년 전 딸을 결혼시키면서 딸이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만 데리고 살다가 성인이 되면 시집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시집에 보내지기 수일 전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르가라 양은 부모에게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호소한 결과 25일 결혼 취소판결을 받아냈다. 인도에서 조혼이 취소된 역사적인 첫 사례다.

BBC와 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세계 여권운동가들이 사르가라 양의 성공이 인도에 만연한 18세 미만 여성 조혼 폐지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고 25일 전했다. 지난해 유니세프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내 여성 조혼율은 44.5%로 네팔(51.4%)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다. 인도에는 아동결혼금지법이 제정돼 있어 조혼을 시키다 발각될 경우 10만 루피(약 2400만 원)의 벌금형과 징역 2년형이라는 중형에 처해지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온 마을이 나서서 어린 신부를 화려하게 단장시키고 식을 꾸미는 등 조혼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조혼을 신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적발 건수도 적은 편이다.

인도의 조혼에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결혼 지참금을 받을 수 있고 부양 책임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목적 때문에 빈곤층이나 지방에 만연한다. 오랜 전통이라 당장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손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인도의 한 할아버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조상 대대로 해오던 풍습인데 정부가 도대체 왜 막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격분했다. 심지어 22일 라자스탄 주에서는 주민들이 40쌍의 조혼식을 막으려는 정부 관리들을 공격해 관리 12명이 부상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18세 미만 여성 1000만 명이 결혼한다. 국제여성연구센터(ICRW)는 조혼 여성들이 18세 이후 결혼한 여성들보다 2배가량 더 가정폭력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6세에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둔 루크하마니 씨(26·여·인도)는 “결혼을 좀 더 늦게 했다면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며, 지금처럼 땡볕에 벼를 베고 밭을 일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운동가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81)는 “수백만 소녀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강탈하는 인습은 사라져야 한다”며 ‘어린 신부 금지 이니셔티브’를 제창하고 나섰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평균 60∼70%의 조혼율을 보이며 아랍권에도 일부 남아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법무부는 곧 결혼 최저 연령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지난주 발표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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