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하버드大 ‘43년 냉전’ 풀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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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서 강연… 학생들 환영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12일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하버드 매거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12일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하버드 매거진
“하버드대의 전설적인 동문 한 명을 소개합니다.”

12일 개교 375주년 특별 강연이 열린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홀. 드루 파우스트 총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올해 89세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는 감격에 겨운 듯 천천히 객석을 둘러봤다. 43년 만에 다시 밟은 모교 캠퍼스였다. 젊은 학생들은 휘파람까지 불며 ‘46학번 동문’ 키신저를 열렬히 환영했다. 객석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하버드대가 발행하는 ‘하버드 매거진’은 이날 행사를 ‘하버드대와 키신저의 데탕트(긴장완화)’라고 했다. 공산국가와의 데탕트 정책을 개척하며 이름을 날린 키신저 전 장관이 자신과 모교 하버드대의 냉전시대를 약 40년 만에 끝맺는 역사적 순간을 비유한 것.

독일 유대계 이민자 아들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키신저는 종전 후 바로 하버드대에 입학해 1954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31세 젊은 나이에 모교 교수로 임용돼 외교학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1969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 합류해 1977년까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지내며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강조했던 진보적 학풍이 주류였던 하버드대는 그를 비난했다. 특히 하노이, 캄보디아에 폭격을 가하며 베트남전 개입을 강화하자 교수들이 단체로 그를 찾아가 “우리는 당신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도 했다. 하버드대는 국무장관을 퇴임한 그에게 다시 교수 자리를 주지 않았고 웬만한 유명 동문에게 주는 졸업연설 기회와 명예박사 학위도 주지 않았다. 키신저 전 장관도 자신을 냉대해온 모교를 약 40년 동안 찾지 않았다. 두 자녀도 예일대로 보내고 예일대에 연구자료를 기증하는 등 예일대와 돈독한 관계를 쌓았다.

이날 강연은 하버드대의 여성 총장 파우스트가 먼저 키신저 전 장관에게 손을 내밀면서 성사됐다. 그는 강의에서 하버드대 입학 후 기숙사가 없어 한동안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했으며 애완동물 반입 금지에도 불구하고 기숙사에서 개를 키웠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화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교수가 소질이 없다며 말렸다는 등 대학 시절 추억담도 소개했다. 또 “학자는 최상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책결정자는 한정된 옵션 중에 가장 나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주의 외교정책을 펼친 이유를 설명했다. 인터넷매체 데일리비스트는 “열렬한 환영 속에 이뤄진 키신저의 하버드대 ‘귀향(Homecoming)’에서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9·11테러 이후 세대의 사회관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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