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용-연금 보장’ 폐지… 伊 신-구세대 힘겨루기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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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동법 개정 추진에 노조-기득권층 강력 반발
취업난 젊은층은 개혁 지지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는 아순타 린차 씨(33·여)는 스물세 살에 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정규직으로 일해보지 못했다. 작년 6월 콜센터에서 교환원을 한 것이 마지막 일자리였다. 그녀는 “내 졸업장은 벽 장식용으로 걸기에 딱 알맞다”고 자조한다.

반면 린차 씨의 아버지(60)는 초등학교 5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 있지만 1994년 42세에 은퇴한 뒤 연금을 받으며 별 걱정 없이 생활하고 있다. 전기기술자로 근무하던 국영철도회사는 당시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퇴직자들에게 평생연금을 보장해줬다. 평생연금을 약속하지 않고는 직원들을 내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기성세대에게 평생고용 또는 평생연금을 보장해줬던 노동법 조항 개정을 둘러싸고 이탈리아 신구세대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일 마리오 몬티 총리가 기업의 해고와 채용을 용이하게 하는 법률안 개정을 추진하면서 노조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고 보도했다. 핵심 쟁점은 노동법 제18조. 1970년 만들어진 이 조항은 15인 이상 고용 기업은 ‘정당한 사유(just cause)’ 없이 근로자를 해고한 경우 반드시 복직을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법원이 지금까지 기업의 해고를 거의 예외 없이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에 한번 정규직에 취업하면 실질적으로 평생고용이 보장됐다.

하지만 이 조항 때문에 이탈리아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소득 및 고용안정 등에서 격차가 벌어졌고, 경제난이 닥치자 기업들은 재정부담을 느껴 아예 고용을 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젊은 세대 가운데는 정규직 시장 진입 기회를 봉쇄하는 주범처럼 여겨져온 18조 조항의 개정을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1월 현재 이탈리아의 15∼24세 실업률은 31.1%로 독일(7.8%)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18조 조항은 나이 든 근로자에게는 보호막이 되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비정규직에 취직한 젊은 근로자들에게는 정규직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이원적(two-tier) 노동시장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젊은층은 내심 몬티 총리의 개혁안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웹사이트 ‘리퍼블릭 오브 인턴스’를 운영하는 엘레오노라 볼톨리나 씨는 “노조는 이탈리아 노동시장이 붕괴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정부가 탱크같이 개혁안을 밀고나가 철회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국제정치#이탈리아#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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