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 소각과정, 착오와 절차 무시의 연속”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4일 0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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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킨 코란 소각 파문은 미군이 좀 더 신중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사건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3일(현지시간) 외신은 지난달 20일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 도서관에 보관 중이던 코란이 소각되는 과정에서 일련의 판단 착오와 절차 무시, 불운 등이 잇따랐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미국-아프간 공동조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건 당일 미군은 아프간계 미군 통역관 2명에게 도서관 서적 중에서 안보에 위협이 될만한 서적들을 선별하도록 지시했다.

서적 중 일부가 극단주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바그람 기지와 인접한 파르완 수용시설 수감자들 간의 과격 메시지 교환에 이용되거나 죄수들의 조직화에 악용될 수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통역관은 골라낸 책은 모두 1652권이었고 그 중에는 코란을 비롯한 각종 종교서적과 통속적인 소설, 시집도 있었다. 여백에 현지어로 이런저런 글귀가 새겨진 책이 선별 대상이었다.

이들 글귀가 실제로 안보에 위협적인 내용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글귀는 재소자가 가족의 이름이나 체포된 장소 등을 적어놓은 단순한 낙서로 테러와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군은 이들 서적을 다시 분류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통역관 2명이 1600여권의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통역관 2명에게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이 문제의 단초가 됐던 셈이다.

판단 착오와 절차 무시가 시작되는 것은 이 시점부터다.

미군은 서적들이 민감한 것이고 보관할 만한 충분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소각을 결정했지만 당장 불태워야 할 정도로 공간 문제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즉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은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취해야 할 조치가 소각임에도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운까지 겹쳤다. 상부의 소각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 서적을 소각장으로가져가려고 트럭에 싣는 장면을 목격한 아프간 병사는 자국 지휘부에 이를 보고했고아프간 측은 즉각 미군측에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하지만 미군 측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당 서적들이 화염에 휩싸인 이후였다.

소각장에서 미군 병사들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코란이 불타는 장면을 목격한 아프간 노동자는 경악했다. 그는 휴대전화로 "미국인들이 코란을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현장으로 달려온 그의 친구들은 물을 부으면서 진화에 나섰고 한명은 불길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지만 이미 네 권의 코란이 불에 심하게 그을려진 상태였다.

코란 소각 사실이 알려진 이후 아프간에서는 연일 폭동이 이어지면서 지난주에 아프간인 29명과 미군 6명이 사망했다.

미군 당국은 코란 소각에 관여한 미군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던것으로 확인됐다면서도 지휘관을 포함해 6명을 징계에 회부하겠다며 아프간 달래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간 내부에서는 신성모독 혐의로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으며, 종교 지도자들도 교도소 운영권 이양과 관련자들의 공개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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